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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무관심 Jul 30. 2021

<D.P 개의 날>(2015), 리뷰

드라마를 기다리며

"너는 계에에에속 밖으로만 다녀서 우리 하는 꼴이 존나게 비합리적으로 보이겠지만 말야. 그게 비효율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너. 짬마다 해야 하는 일들, 하지 말아야 하는 일들, 정해 놓은 그거. 병장 돼서 생각해보면 '아... 이래서 이렇구나' 하고 진짜 그 절묘함에 감탄을 할 정도라니까. 내 생각에 말야. 너는 눈깔이 싸제라 그런 게 안 보이는 거야. 그런데 말이야. 준호야. 여기는 군대거든. 군대는 군인의 눈으로 봐야지. 애꾸만 사는 나라에선 눈깔 두 개인 놈이 병신인 거야."


"군생활 내내 내가 본 건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도망 다니는 불쌍한 애들이었어.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부서진 가족이었고,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었어. 영화에 나오는 악당이 아니라, 바로 너 같이 생각하는 평범한 새끼들."


- 10년 전의 어느 봄날. 생활관에서 내무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친하게 지내던 한 후임이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황병장님. 황병장님이 이렇게 얘들한테 웃으면서 천사역할을 해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건, 우리가 밑에서 얘들을 엄청 갈구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선과 위악의 시간들. 용서받지 못한 날들. 선한 웃음으로 부조리의 정점을 누렸던 때도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어떻게 이곳을 잊을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이곳을 잊지 않고 기억해 낼 수 있을까. 라는 고민 모두 희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보게 된 <D.P 개의 날>.


군대에 관한 영화나 만화들 모두 화두를 던지지만, 사실 그 어떤 답을 내리지 못한다. 마음속 불편함이 가득 차지만 결국 군대는 어쩔 수 없잖아 라는 자조와 체념만이 남을 뿐이다. 나쁜 부조리와 덜 나쁜 부조리의 도돌이표 속에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모든 가해자가 한때는 피해자였던 무간의 굴레 속에서, 어쩔 수 없었기에 어쩌지 않았음을,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지만 되돌아가지는 않았음에 안도를 하면서, 어떻게든 2년은 흘러 모두들 제대를 한다. 군대라는 화두를 던진 이야기들의 끝을 맺는 것도 언제나 시간이다. 주인공이 전역을 하며 이 만화도 끝이 난다. 좋은 내용, 좋은 고민, 좋은 생각들이었다. 먹먹하고 또 막막하다. 하지만 역시 답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 읽게 된 작가의 에필로그.  


"디피 1부는 여기까지 봐주신 모든 분들을 목격자로, 그래서 공범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이후 (약 2년 뒤) 시작될 2부에서는 그저 방관하고 침묵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이야기를 할 생각입니다."


2년 뒤에 내딛을 작가의 한걸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무리하게 답을 내려다 리얼리티가 무너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지만, 그럼에도 그 한걸음에 기대를 해본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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