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혁명의 무거움
어린 소년과 국회의원이 물에 빠지면 물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국회의원부터 구한다는 등, 정치인과 정치문화에 관한 수많은 풍자와 조롱, 비아냥거림이 회자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정치인들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기만 하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최일구 앵커는 한국 정치인들에겐 위트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계속되는 상호비방과 폭언 그리고 격투의 난무 속에서 그들은 웃음을 잃어버렸고, 그런 그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그저 웃음밖엔 나오지 않게 되었다.
정치인들의 이러한 웃음의 빈곤은 선천적인 유머 능력의 결핍이라기보다는 웃음과 풍자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기인한다. 마치 『장미의 이름』의 호르헤 수도사처럼 그들은 진지함의 도서관에서 눈이 멀어있는 듯하다. 비극뿐만 아니라 웃음도 우리 삶에 유용하며 진리를 나르는 수레가 될 수 있음을 그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중엽의 프랑스 사회를 감싸고 있었던 분위기 역시 압도적인 무거움이었다. 민중들의 열약한 삶의 조건, 이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과 무수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만난 세계는 구체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혁명적인 지식인들은 그 시대만큼이나 진지하게 체제의 모순을 분석하고 이론화하였다. 소유는 모든 권력=착취=지배로 통하는 수단이라고 부정하고, 힘 대신 정의를 가치의 척도로 삼아 인내심을 가지고 자본가의 양심과 인도주의에 호소해야 한다고 강조한 프루동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보들레르는 이러한 프루동의 이론을 믿지 않았다. 단지 사적 소유를 철폐함으로써 민중들에게 수동적인 평등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직접 평등을 쟁취할 수 있도록 각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람과 평등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자만이 다른 사람과 평등할 수 있고,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자만이 자유에 값한다.”라고 생각했다. 자유로운 상상력이 넘쳐났던 시인 보들레르는 진지하고 도식적인 프루동의 이론에 반대하기 위해 방대한 양의 이론적인 글을 쓰지 않았다. 보르헤스의 말처럼 단 몇 분에 걸쳐 말로 완벽하게 표현해 보일 수 있는 생각을 500여 페이지에 길게 늘어뜨리는 것은 쓸데없이 힘만 낭비하는 정신 나간 짓이기 때문이다. 그는 단 한 페이지의 글에 자신의 생각을 담았으며, 거지와 화자가 치고받고 싸우는 우스꽝스러운 묘사를 통해 프루동의 이론을 비틀어버린다. 동시에 그는 혁명의 무거움과 민중의 비장함을 일상의 언어로 끌어내림으로써 신화로서의 혁명이 아니라 삶으로서의 혁명을 조명한다. 혁명을 감싸고 있는 그 무거운 외피를 벗겨버릴 때, 비로소 그것은 이론가들의 전유물에서 민중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웃음이 진리를 나르는 수레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진리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 누구에게나 전달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가볍다는 것은 얕다는 것이 아니다. 가벼우면서도 충분히 깊은 진리를 담을 수 있다. 지난 6월, 그들이 쌓아놓았던 컨테이너의 장벽을 비판하는 데에는 장문의 논설보다, ‘명박산성’이라는 풍자가 훨씬 더 효과적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보들레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혁명의 진리란 가벼울수록 더욱 멀리 퍼져나감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