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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무관심 Dec 12. 2022

2017년, 4월의 일기

부산을 떠나 산 지 어느덧 14년째. 요즈음만큼 부산에 자주 내려온 적도 없는 것 같다. 일 년에 두세 번 볼까말까 했던 가족들의 얼굴을 한 달에 한 번씩은 보고 있다. 처음 상경했을 때는 20년간 함께 살았던 가족들과 떨어져 지낸다는 게 지독히도 힘들었다. 재수를 해서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자퇴를 하고 부산에 다시 내려갈 생각까지 했었다. 많이 외로웠고 낯설었다. 서울 살이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채 3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지난달에 부산에 갔을 땐 20년 만에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를 둘러보았다. 설마 했던 그 시절의 문방구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봤을 때도 참 오래 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그만큼의 나이를 문방구도 먹어버렸다. 혹 일찍 결혼한 동창이 있다면, 그의 아이들은 부모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은 문방구에서 불량식품을 사 먹으며, 엄마 여기 문방구는 언제 부터 있었어? 라는 물음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 내려갔을 땐 15년 전에 다녔던 재수학원을 가보았다. 학원 입구의 철창 사이로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이 면회를 온 기억이 났다. 그 앞에는 오락실이 있었는데 지금은 PC방으로 바뀌었고, 학원의 이름도 조금 바뀌었다. 2002년은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렸던 해였고, 재수를 하던 중에도 호프집에서 8강 스페인전을 단체로 응원했었다. 학원 친구들과 많이 친해져, 수능이 점점 다가올 즈음에는 대학에 대한 걱정보단, 이제 앞으로 이 친구들을 만날 날이 얼마 없겠구나 하는 서운함이 더 컸었다. 서울에 온 뒤에도 몇 번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1년쯤 후에는 반창회도 할 만큼 돈독했었다. 그 친구들 대부분과 연락이 끊어졌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오랜만에 기차를 탔다. 웬만해선 비행기 가격이 KTX보다 싸 근래엔 거의 비행기를 타고 다녔는데, 주말이라 그런지 표값이 대부분 비쌌다. 그래서 돈도 아낄 겸 기차를 타려고 했는데, 사실 괜히 오랜만에 기차를 타보고 싶기도 했다. 비행기는 너무 빨리 움직여, 마음의 준비가 되기도 전에 서울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서울로 도착했다. 서울의 생활과 부산의 생활은 완전히 달라서 그 공간이 바뀌는 것은 삶의 양식이 바뀌는 것인데, 비행기에서는 그 변화의 여운을 느낄 새가 없었다. 뭔가에 쫓기는 것처럼, 다른 공간에 적응하는 것이 삭막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군대 휴가를 나올 때부터 기차를 탈 때면 늘 서점에 들렀는데, 그게 내 나름대로 휴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물론 거기서 산 책을 기차에서 읽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괜히 한참을 서점에서 보내곤 했었다. 이번에도 서점을 들렀다. 요즘은 거의 책을 읽지 않기 때문에 따로 책을 사진 않고 기차에 올랐다. 2시간 반은 생각만큼 길지도, 생각만큼 짧지도 않았고 오랜만에 도착한 서울역은 생경하면서도 또 익숙했다. 이사를 하고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타고 집으로 이동했다.


1시간 40분. 서울역에서 집에 도착하는데 는 꼬박 100분이 걸렸다. 비어있는 9호선의 지하철과, 20분이 넘는 배차간격의 버스를 타고, 한참을 와서 집에 도착했다. 차로 출퇴근을 할 때는 몰랐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문득, 굉장히 나, 멀리까지 와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중했던 것들과도 추억과도 점점 더 멀어져, 마치 14년 전 처음으로 서울에 왔던 것처럼 세상에 혼자가 된 것 같은데, 그때처럼 막막한 느낌이 들지가 않는다. 그게 또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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