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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무관심 Jul 16. 2021

전역 일기(2007.9.11)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태워버려도 그리 나쁠 건 없다는 곳에서의 생활도 이제는 끝났다.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주고받는 삼류 코미디 프로를 보며 무엇 때문에 왜 웃는지도 모른 채 껄껄거리며 시간을 때워도, 오지도 않는 잠을 보채어 바닥을 뒹굴며 모처럼 야한 꿈이나 한 번 꿔보길 기대하다 머리가 띵해져서야 겨우 자리에 일어나더라도, 결국 이렇게 시간을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날들도 끝났다.


어떻게든 밥은 먹을 수 있었고, 잠은 잘 수 있었다. 생존이 보장되어 있는 곳에서 인간은 얼마나 삶에 충실해질 수 있을까. 내가 왜 사는지를 모른다고 해서 매일매일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앞으로의 2년을 먹고 살 방법이 없다면, 삶의 모든 순간은 생존의 문제로 채워질 것이다. 삶의 진지함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 고민은 다음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그렇게 모든 질문과 해답을 2년 후로 미뤄두었고 시한부의 자유가 찾아왔다. 나를 가장 구속한다고 여겼던 곳에서 비로소 나는 가장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무책임했던 자유의 시간도 이제는 끝났다.


지금 이 순간이 마냥 기쁘지만 않은 것은 자신이 온전히 책임져야 할 자유의 무게를 실감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자유에 짓눌려 청춘을 낭비했던 시절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낭비마저 추억이 될 수 있는 건 단 한 번뿐이다. 이 자유를, 두려움을, 떨림을. 그 모든 것들을 후회 없이 즐기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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