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스트가 수락되었습니다.
만 40세. 어느덧 인생의 후반전이다. 이제야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20대엔 술과 책을 좋아했다. 김수영의 산문 ‘요즈음 느끼는 일’은 내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이유였다.
혁명 후의 우리 사회의 문학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예전에 비해서 술을 훨씬 안 먹습니다. 술을 안 마시는 것으로 그 이상의, 혹은 그와 동등한 좋은 일을 한다면 별일 아니지만, 그렇지 않고 술을 안 마신다면 큰일입니다.(김수영, 1963)
30대 초중반에도 술은 즐겨 먹었다. 이땐 ‘작가는 글만 안 쓰면 참 좋은 직업’이라고 했던 김영하의 말에 주어를 PD로 바꿔가며 술을 먹곤 했다. 평생 술을 즐길 줄 알았는데 또 막상 그렇진 않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겼다. 연락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매해 줄어갔다.
20대엔 평생 책을 곁에 두며 살 줄 알았고, 늘 술을 먹으며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거라고 생각했다. 책도 술도 더 이상 나의 취미가 아니다.
하지만 또 40 평생 동안 즐겨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게임이다. 초등학교시절부터 오락실을 끊지 못했던 나는 대항해시대를 통해 세계지리를 알게 되었고, 코에이를 통해 삼국지의 역사를 익히게 되었다. 그 시절의 여느 남학생들처럼 미연시를 통해 처음으로 연애를 해볼 수 있었다. 몇 시간씩 같은 자리에 앉아 밸리에서 대포를 쏘며 샷샷을 외쳤고, 대학생땐 술을 마시다가도 PC방에 가서 3:3 스타를 했었다. 그러다 게임방송국에 취업해 여기까지 왔다. 구 위닝일레븐 현 이풋볼 클랜에 가입해 아직도 활동 중이며, 야생의 숨결을 하며, 아 나의 지난 게임 인생은 바로 이걸 하기 위해 존재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캐릭터를 키우며 쏟았던 시간과 노력에는 비할바가 못될 육성시뮬레이션을 2년째 진행 중이다. 이 게임엔 튜토리얼도 없고 세이브도 없다. 현질은 난이도를 조금 낮춰주겠지만, 결국 중요한 건 시간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 캐릭터와 함께 보내며 추억을 쌓고 관계를 깊게 만드느냐가 관건이기에,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꽤 공정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아무리 게임을 하드캐리한다고 해도 일찍 끝나지도 않으며, 한 번 수락한 퀘스트는 포기할 수 없다.
여기 이곳에 수십년이 걸릴, 모험의 일지를 남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