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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Candy Mar 09. 2022

확증편향 강화의 시대

보고 싶은 것만 더 보게 된다

20대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을 열심히 보는 중이다. 눈에 띄는 점은 첫째, 결과를 짐작하기 어려운 박빙의 선거라는 것. 둘째, 성별에 따른 정치성향의 대립이 특히 20대에서 뚜렷하다는 것. 셋째, 세대를 막론하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반대 후보를 극렬히 반대하는 경향도 상당해 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를 짚어보고 싶다.


1980년대 이전까지 경제학의 기본 가정 중 하나는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주류 경제학에서 가정했던 '인간은 합리적 존재' 라는 말은, 긍정적 유인에는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부정적 유인에는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1979년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전망 이론'을 발표한 후,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 경제학에 스며들게 되었다. 심리학과 경제학을 결합하여, 이론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인간의 판단과 비합리성을 주로 탐구하는 행동경제학 분야가 열린 것이다.


당신이 무언가 선택하는 순간을 잘 떠올려 보라. 당장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을 때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혹은 아침 7시에 듣기 싫은 알람이 울려댈 때 10분만 더 자다 일어날지 곧장 일어날지 마음 속에서 갈등하던 순간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 떠올려 보라. 그리고 그 선택이 과연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이루어졌는지도 곰곰히 복기해 보라. 아마 모든 선택이 합리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는 당신이 합리적이라고 믿었던 여러 가지 선택들도 사실은 직관이나 감정 등이 크게 작용했을 수 있다.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책을 추천한다. 인간이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또 우리의 신념이나 가치관의 형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정말 흥미롭게 제시한 책이다.




행동경제학에서 제시하는 개념 중 하나는 '확증편향'이다. 쉽게 말해서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지금 확증편향을 강화시키기 정말 용이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이 유튜브를 본다면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영상은 휙 넘겨 버릴 것이고 이재명 후보를 좋게 표현하는 영상에는 아마 더 오래 머무를 것이다. 이제 알고리즘이 작동한다. 다음 영상도, 그 다음 영상도 자신의 믿음과 신념을 강화하는 영상들 - 이재명 후보의 장점에 집중하는 영상들 - 이 눈앞에 너무 많이 펼쳐지게 되고, 확증편향은 강화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정 커뮤니티를 자주 이용하는 누군가가 윤석열 후보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마음 속에 심게 되면, 해당 커뮤니티에 업로드되고 유통되는 비슷한 결의 수많은 자료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점점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굳게 확신하게 된다.


사람들이 SNS와 유튜브, 커뮤니티 등 정보의 편집과 왜곡이 용이한 온라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각자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신념에 반대되는 의견보다는 그것을 강화시켜 주는 의견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그러면서 확증편향은 점점 강해진다.


온라인 공간이 지금처럼 커지기 전에 사람들의 가치관 형성은 어땠을까 생각해 보자. 종이 신문을 읽거나, 타인과의 대화나 교류 등을 통해 자신만의 신념을 만들어갔을 것이다. 현재는 그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습관처럼 켜는 인터넷 커뮤니티, 유튜브, SNS, 인터넷 기사 등 온라인 공간이 한 개인의 가치관 형성에 상당히 기여한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어떤 시대에 더 '거짓' 이나 '왜곡된 정보', 혹은 '작성자의 입맛에 맞게 편집되고 잘려나간 정보들' 을 접할 가능성이 높을 지 상상해 보자.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Post-truth' 였다. 여론 형성에 있어서 실제 진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를 담는다.


현재 20대의 정치선호가 성별을 기준으로 극명하게 갈리는 데에는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확증편향을 강화하기 좋은 환경에서 자라왔다는 사실도 강하게 작용했다고 본다. 단순히 이재명 or 윤석열에 대한 지지를 넘어서 이제는 우리 사회의 주요 과제 중 하나가 된 성별갈등이라는 더 큰 담론이 있겠지만 말이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더 잘 보이는 것은 사실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는 그 본능을 최대한으로 폭증시켜주는 시대에 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회의 발전은 의견이 다른 집단들이 나름의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능하며, 한 개인의 발전은 자신의 신념과 의견에 과감하게 태클을 걸어 보는 자세에서 일정 부분 찾아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굉장히 합리적이고 거의 무조건 옳다고 믿는 것들에 대해서도 의심해보려고 노력한다.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대해 꼭 한번쯤은 반기를 들어 보는 순간을 갖길 바란다. 나름의 치열한 고민과 생각 끝에 건강하게 쌓아올린 가치관을 억지로 폐기해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더 살기 좋은 사회, 더 나은 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어떤 과정이 우리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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