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dy Candy Mar 10. 2022

시대정신

개표를 지켜보는 몇 시간이 지나고, 이제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났다. 지금 환희를 느끼는 사람이건, 비참함을 느끼는 사람이건, 또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이건, 걱정이 앞서는 사람이건간에 이번 선거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약간의 감정적 여운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 박빙이었던 대통령 선거의 여운을 나는 이 글로 풀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냥 가볍게 봐주시라.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꽤 어릴 때부터 내가 누구인지 자꾸 궁금해했고, 어떤 사람인지 찾아 다녔다. 지금도 그런다. 내가 누군지 알려면, 내가 속한 집단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인간은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영향을 상당히 받기 때문이다. 나는 지구인이고 아시아인이고 한국인이며 수도권에 산다. 97년생이고 남성이며 대학생이다. 키는 꽤 큰 편이고 안경을 썼으며 가끔 롤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평범하고 어떤 면에서는 못났고 어떤 면에서는 잘났다. 이렇게 내가 속한 집단은 정말 많은데, 그 중에서 요즘 특히 인기가 많은 것이 내 세대라는 놈이다. 나는 20대고 남자니 소위 이대남이다. '요즘 20대' 얘기를 좀 해보고 싶다. 20대가 하는 20대 얘기니, 마음 가는 대로 말해본다. 내맘대로..




선거를 보면 알 것이다. 대충 60-80대, 40-50대, 20-30대로 세대를 구분지어볼 수 있다. 이런 기계적인 세대구분에 집착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냥 내 잡생각이다. 첫째로 나는 현재 60-80대의 시대정신은 물리적 생존이었다고 본다. 내가 지금 말하는 시대정신은 그 세대의 사람들이 독특하게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그들끼리 공유하는 역사적 경험을 말한다. 현재 60-80대 분들은 일제강점기와 남북전쟁을 겪으면서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을 받았던 세대이다.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싶어하는 것이 이 세대의 시대정신이 아닐까 감히 질러본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일 수가 없다. 생존에 엄청난 위협이었던 북한에 대한 감정은 우호적일 수가 없다. 자유와 평등을 갈망하는 것은 일단 살고 나서 얘기다.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 오랜 기간 동안 군부독재가 유지된 것, 현재 60대-80대의 정치적 성향이 극도로 보수적인 것 모두 일정 부분 공유하는 맥락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세대 분들을 비판할 의도는 전혀 없다. 아픈 역사의 범인은 선량한 대부분의 시민들이 아니라 무지하거나 못된 소수라는 것을 안다.


현재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40-50대의 시대정신은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화라고 생각한다. 현재 40-50대끼리 공유하는 강력한 역사적 경험은 군부 독재 정권을 몰아내고, 민주화를 얻어낸 일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 또한 생존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이후였으니 가능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시위와 학생운동 등을 통해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실현되고 독재국가에서 민주국가로 변해 가는 모습들을 젊은 날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면서, 혹은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이 세대의 자기 효능감이 상당히 높아졌다. 사람들이 합의하고 또 행동한다면 여러 가지 사회의 문제들이 충분히 해결되고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에 암묵적인 동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을 강하게 갖지 않나 생각해 본다. 물론 전혀 들어맞지 않을 때도 있지만 어느 정도 진보=이상주의, 보수=현실주의라는 맥락이 있는데, 이상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게끔 만드는 역사적 경험을 했던 것이다.




그럼 지금 내 세대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지금 20-30대의 시대정신은 다시 생존의 문제로 돌아왔다. 육체적 생존이 아니라 사회적 생존의 문제 말이다. 굉장히 어린 나이부터 무한 경쟁으로 인해 패배 혹은 낙오에 대한 불안감을 뼛속 깊이 새기고 있는 세대가 비극적이게도 내 세대라고 생각한다. 돈을 못 버는 백수라면, 사회적 죽음을 선고받는다. 가난은 악행보다 피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돈을 벌지 못하거나, 직업을 갖지 못하거나, 남들 다 있는 차 혹은 집이 없어서 사회적으로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스트레스. 사회적 생존의 위협이라는 문제가 우리 세대가 공유하는 한 가지 키워드인 것이다. 뉴스에서 20대를 대상으로 하는 인터뷰를 보라. 사회적 생존과 관련된 일자리, 직업, 돈, 주거환경 얘기가 거의 전부이다. 물론 이것은 모든 세대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기도 하지만, 특히 우리 세대가 여기에 미쳐 있다. 경쟁은 기본적으로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를 배출한다. 한 반에 30명이 있다고 하면, 성적 경쟁에서 승자라고 불릴 수 있는 학생은 1등부터 많이 쳐줘야 10등까지다. 11등부터 30등까지는 굳이 따지자면 패자에 가깝다. 고등학교 3년이 끝나고 입시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느끼는 학생보다 처절하게 패배했다고 느끼는 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자본주의에서의 경쟁이란 기본적으로 그런 것이다. 가위바위보처럼 승자가 한 명이라면 패자도 한 명이면 좋겠지만, 승자는 소수이고 패자는 다수이다. 세대의 자기 효능감은 매우 낮아진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딱히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인식이 여기저기 깔려 있다.


재벌에 대한 무의식적인 호감 역시 일정 부분은 여기서 온다고 본다.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을 쁘띠하게 표현하는 등 재벌들에 대한 어떤 호의적인 반응은 20대와 60-80대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생존이 시대정신이라면, 그 생존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에게 절대로 밉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존이 우리 세대의 시대정신이 맞다면, 자본주의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군림하는 소수의 재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거나 싫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치 침팬지들이 대장 침팬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털을 골라주거나 몸 구석구석을 핥아 주며 아부하는 것처럼, 또 마치 사자들이 힘센 수사자 앞에서 대자로 누워 속살을 보여주며 앙탈을 부리는 것처럼, 재벌들에 대한 미묘한 호감과 우호적 감정은 힘센 자에게 잘 보이고 싶은 애처로운 본능에 가까워 보인다.


내가 짧은 머리로 생각한 우리 세대에 대한 단상이 완전 헛소리일지, 아니면 어느 정도 들어맞는 구석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좋으나 싫으나 내 동류집단 아닌가. 나에게 영향을 주는 집단 아닌가. 나부터 좀더 멋진 사람이 되어보기로 마음먹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확증편향 강화의 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