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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Candy Sep 22. 2023

영화 [잠] 결말과 해석

현수(이선균)의 몽유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잠]은 유재선 감독의 입봉작으로, 몽유병을 소재로 한 서스펜스 영화입니다. 다른 많은 분들이 영화의 결말 부분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보여주시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보려고 합니다.


영화의 표면적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 신혼부부인데, 어느 날부터 현수가 잠에 든 채로 이상한 행동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먹는다거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정도였지만 점차 증세는 심해지고 결국 둘이 키우던 강아지 후추마저 현수에 의해 죽게 됩니다.


병원의 도움을 받아도 현수의 증세가 나아지지 않자 수진은 현수의 몸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아랫 집 할아버지의 영혼이 빙의된 것이라고 믿게 되었고, 현수는 그런 수진의 말을 납득하지 못합니다. 현수에 몸에 귀신이 붙었다는 수진과 그것을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믿는 현수의 갈등이 후반부 클라이막스의 주를 이룹니다.


몽유병에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는 현수와 수진.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결국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다룬 영화로 보였습니다.


먼저 둘의 신혼집에는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 할 문제는 없다> 라고 쓰인 나무패가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 나무패를 관객에게 반복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둘이 처음으로 병원을 찾아갔을 때에도 가족이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의 포스터를 보게 되지요. 영화 중반까지 현수와 수진 둘은 굉장히 협력적이고 건강한 자세로 몽유병을 극복하려고 시도합니다. 애지중지 키우던 강아지 후추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수진은 좌절하기보다는 털고 일어섭니다. 이런 점들에서 이 영화가 단순히 현수의 몽유병 증상과 그것이 자아내는 공포스러움을 넘어서서, 이러한 문제상황에 둘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 에도 역시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현수와 수진의 주변인물들에 있습니다. 현수와 수진의 주변 인물들은 거의 모두 결혼생활에 실패한 이들입니다. 먼저 수진의 엄마는 대사에서 드러나듯 어릴 때 남편과 이혼하여 홀로 수진을 키운 인물입니다. 현수와 수진의 아랫집에 이사 온 중년 여성도 마찬가지로 남편이 없습니다. 그래서 수진이 현수의 몽유병 때문에 고심할 때, 그냥 이혼해버리면 편하다는 식의 말을 건네기도 하지요.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이 영화가 결혼생활과 관련한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현수와 수진의 집에 걸린 나무패.

결국 모든 부부들은 나름대로의 몽유병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현수와 수진은 상당히 합리적이고 건강한 부부입니다. 수진은 배우 생활을 그만두려는 현수에게 적극적인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현실적인 문제보다 꿈을 응원해주는 배려를 보입니다. 현수 역시 꽃을 준비해서 수진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차를 타고 기다리는 모습, 본인의 병 때문에 침낭을 덮고 차에서 자려는 모습들을 보면 둘은 굉장히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부부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런 부부에게도 피할 수 없는 갈등과 해결하기 매우 난감한 문제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몽유병이란 결국 사이가 좋지 않든, 사이가 매우 좋든, 어떤 부부에게든 찾아올 수 있는 부부생활에서의 갈등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녀 문제, 금전적 문제, 시댁 문제, 무엇이 되었든 (물론 영화에서는 흥행을 위한 요소로 몽유병이라는 희귀한 문제 상황을 가정했지만) 모든 부부에게 각자의 몽유병이 있는 것입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둘은 갈등의 절정을 경험합니다. 현수는 자신이 귀신에 씌었다고 믿고 집 전체를 부적으로 뒤덮어 놓은 것, 심지어 자신의 몸에 자신 몰래 글씨를 새겼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문을 박차고 나가려고 합니다. 수진 역시 화가 나서 둘의 사랑과 협력의 상징이었던 나무패를 세차게 집어 던집니다. 어떤 부부든 겪을 수 있는 소위 말해, 이혼 직전의 상황이 아니었을까요. 이때 현수는 잠시 멈칫하다가 나무패를 다시 똑바로 벽에 걸고는, 수진의 장단에 맞추어 줍니다.


그리고는 현수 자신의 몸에 씌인 할아버지 귀신이 빠져나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현수의 모습이 연기인지, 실제 빙의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이후 둘이 관계를 회복했다는 것이 더욱 핵심인 것입니다. 실제 빙의된 것이었다면 수진의 지혜로 상황을 타개한 것이고, 단순한 몽유병이었다면 현수가 자존심을 버리고 수진에게 져 줌으로써 둘은 어쨌든 완전히 갈라서기 직전의 상황에서 다시 서로를 아껴주는 부부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그렇다면 감독은 현수와 수진의 모습처럼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부부 사이를 강타하더라도, 함께 극복해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이혼을 경험한 두 여성 (수진의 엄마와 아랫 집 중년 여성)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수진의 친모는 비록 남편이 없지만 꽤 세련된 생활을 즐기면서 나름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아랫집 여성도 남편이 없지만 자신의 아들과 강아지와 함께 잘 살아갑니다. 이를 보면 결혼생활이 원만히 흘러가지 않더라도 꼭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지요.


결국 요약하면 현수의 몽유병은 모든 부부들에게 있을 수 있는 갈등상황을 의미하는 것이고,


현수와 수진처럼 둘이 함께 마음을 모아 그것을 극복하든, 혹은 타협하지 못해 갈라서든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퇴고 없이 쓴 리뷰라서, 다소 주절주절 할 수 있지만

이런 생각도 있구나 하고 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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