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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글을 쓰냐고
내게 절대 묻지 마라 #2/6

일상으로의 회귀 – 생활·문화편

by 마지막 네오

02.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글쓰기


나는 쓰긴 썼으나 세상에 내보이지 않은 글도 글이라고 생각한다. 왜 읽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하나?

작가는 자신이 글을 쓰면서 동시에 읽고 있는 첫 번째이자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독자이면서 소통자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세상에 내놓을지 말지는 글 쓴 사람 마음이다. 졸작이든 엄청난 명작이든 떠들어댄 사람 마음이다. 누가 나서서 내놔라 넣어라 할 것이 아닐뿐더러 그것이 글이네 아니네 하는 것은 더욱 할 짓이 아니라고 본다. 그렇게 판별하는 사람은 글쓰기 신이라도 되나? 난 개인적으로 신을 믿지 않고, 설사 신이라고 해도 아닌 건 아니라는 게 내 확고한 생각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든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든 누구나 똑같이 소중하고 귀한 아들, 딸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어야 한다. 저자가 곧 독자이듯이 학생이 스스로 자존감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도 하고 화도 내고 남을 헐뜯기도 할 수 있다. 다만 어떤 특정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내세워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정립된 이론인 양 떠드는 것, 울타리를 두르고 새로운 도전을 차단해 버리는 것은 눈 뜨고 못 봐주겠다.


누군가 내게 왜 글을 쓰냐고 묻는다면 잠시 머리가 하얘질 것 같다. 가만히 있는데 누가 와서 갑자기 뒤통수를 탁, 아니 쾅! 때리는 것만 같은 질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누군가 갑자기 다가와서 뒤통수를 때린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솔직한 대답은 ‘왜! 왜지?’하며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금방 정신을 가다듬고 점잖은 척하며 그럴 게다.


“살아있으니까, 내가 살아있잖아. 그러니까 떠드는 거지.”


그리고는 뒤돌아서 스스로 머리통을 탁 칠 것이다. ‘에구, 이 바보!’

살아있다고 누구나 마구 떠든다면, 게다가 그것이 기록으로 남겨지는 글이라면 세상은 혼란으로 가득해지고 말 것이다.


아마 이런 혼란을 막고자, 걱정되어서 많은 글 선배들은 울타리 공사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는 들어가고 너는 못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은 가둘 수 없는 것이고, 특정인이 선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살아있으니까 떠든다는 말은 맞다. 죽어있는 것이 떠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단, 무엇이 살아있느냐가 중요하겠다. 산소를 호흡하면서 뭔가 보고 듣고 생각한다고 해서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건 생물학적으로 살아있는 것이고, 내가 말하는 살아있다는 것은 정신이 똑바로 살아있느냐는 것이다.


무엇인가 의식해서 쓰는 작업은 좋은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기를 쓰듯 자신이 자신에게 하소연하는 글이 가장 좋은 글이라 본다. 일기를 세상에 내보이며 소통의 창구로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글은 가식도, 계산도 없고 누군가를 의식하는 것도 아니지만 기록으로는 남는다.

차후에 누군가 열어보고 본의 아니게 독자가 된다 해도 솔직하게 써 내려간 글은 선한 영향력을 남길 게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일기를 쓰면 자아가 성장한다. 자아에 대한 정체성을 찾아가게 된다. 본인이 의식해서 의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된다. 일반적인 글도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할 수준은 그런 무아지경(無我之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위대한 화가나 음악가가 명작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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