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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글을 쓰냐고
내게 절대 묻지 마라 #3/6

일상으로의 회귀 – 생활·문화편

by 마지막 네오

03. 말하기와 글쓰기


언어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그 생겨남 자체의 필요성이니까 말할 것도 없겠다. 도구적 성격만 말한다면 언어는 누구라도,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맞다.


세상에 아무도 없이 혼자만 있으면 언어를 잊어버린다고 한다. 필요하지 않으니까 당연한지도 모른다. 즉 언어는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이외에 누군가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나 이외의 주변에 영향을 준다.


기분이 나빠서 심한 욕설을 한다면 그 욕설과 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이 들었을 때도 기분이 상한다.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래서 주둥이를 테이프로 확 막아버렸더니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든다. 인간은 존재 자체가 언어다.


요즘 인터넷 포털에서는 욕설을 섞어서 글을 쓰면 인공지능에 의해서 차단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욕이라도 좀 후련하게 해줘야 할 때는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항상 점잖은 언어로 지적인 인격만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인간이란 말인가? 욕도 언어의 한 형태다. 필요할 때는 걸쭉하게 욕을 퍼부어야 할 때도 있다. 무조건 배척되어야 할 문화가 아님에도 욕설이라는 부정적 의미만 강조되어 배척되는 것이 안타깝다.


말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망각의 동물’적 특성을 발휘해 금방 잊어버리기도 한다.

허공에 모양 없이 흩어지고 마는 말과 다르게 백지는 말이 아닌 기록의 바탕이다. 거기에 점을 하나라도 찍는다면 이다음에 내가 죽어 없어진 뒤에도 그 점은 남는다.


“나 죽으면 그만이지, 그게 차후에 어떤 영향을 끼치던 그게 나랑 뭔 상관이냐?”

“너랑 상관있다! 네가 썼으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쓰지 말아야 한다.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왔던 그대로 조용히 돌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다. ‘그렇구나!’ 하고 느낌표가 켜지는 순간, 그때부터 점 하나 찍을 수가 없고 생각만 많아진다.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엄청난 능력에는 그에 걸맞은 책임이 뒤따른다는 ‘스파이더맨’의 메시지처럼 일종의 초능력과 같은 것이다. 그 글을 보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성질 급한 사람은 말한다.


“그러면 구구절절하는 말의 요점이 뭐냐? 그래서 왜 쓰냐고? 도대체! 쓰지 말라고?”


뭐, 각자 엄청난 활동량을 자랑하며 두뇌를 풀가동해서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것이다. 심지어는 “맞아! 그 이유가 궁금해서 쓰는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 많고 다양한 의견을 모두 생각하고 판단하려는 짓은 멍청한 짓이다. 그래야 할 이유나 필요성도 없다. 또 자격은 더욱 없다.


나 또한 당신의 생각이나 선택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것뿐이다. 그건 내 자유다. 말은 듣기 싫어도 들려 오지만 글은 읽기 싫으면 안 읽으면 그만이다.


물론 나의 글이 당신에게, 우리 사회에, 더 나아가 온 인류에게 선한 영향을 준다면 더 바랄 것은 없겠지만, 그건 한심한 개인적 욕망일 뿐이다.


(#4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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