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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글을 쓰냐고
내게 절대 묻지 마라 #4/6

일상으로의 회귀 – 생활·문화편

by 마지막 네오

04. 불완전한 것에 의미를 담아


사람은 기본적으로 비판하는 동물이다. 누구나 생각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옳다는 시점에서 출발한다. 그런 특성은 백지를 채워나갈수록 더 심해진다. 순수했던 아이가 자라면서 눈알에 핏발을 곤두세우며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듯이, 백지는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아집과 독선, 고집과 오만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나의 소망은 글은 쓰되 백지에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고 그대로 백지이기를 바란다. 쓰면 지워지는 펜 얘기가 아니다. 의미를 담되 내 안에 남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바람이라 한다.


누군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해서 그저 나 자신을 가끔 들여다보는 것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는 부족한 인간임을 직시하며, 바보짓도 가끔씩 하는 그런 내가 좋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무조건 고개를 끄덕거렸다면 당신은 바보다.

어떤 사람이 전문가 소리를 듣고 박사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말하는 내용이 전부 무조건 옳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스스로 아무 생각 없는 사람임을 입증하는 셈이다.


사회적 증명은 보편적인 것이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보편적인 것이 각 개인의 특정 상황에 모두 이빨이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거의 없다. 따라서 나는 떠들되, 당신은 내 이야기를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길 바란다. 비판할 줄 아는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이다. 무조건 상대 의견에 반대하고 시비를 걸고 싸우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실 나의 이야기뿐 아니라 제아무리 위대하다는 철학자나 대문호를 비롯해 그 누구라도 완벽한 의견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본다. 아니, 세상에 완벽함이라는 건 애초에 없다. 세상도 인간도 모두 불완전하다. 인간은 불완전해야 살아갈 수 있다. 불완전함 때문에 힘들고 불편할지언정 불완전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린 불완전한 것이다.


‘완벽’, ‘완전’과 같은 단어는 개인적 각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런 상황이나 느낌을 위해 준비된 단어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차분하게 가만히 생각해보라. 정말 없다.


완전함, 완벽함이 존재한다면 ‘의미’는 사라진다. 생각하고 말하고 듣고 쓰는 행위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미’다. 의미 없는 생각이란 붕어빵에 팥이 빠진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이미 완벽한 존재가 무슨 생각을 따로 고민할 필요가 있나? 생각에 의미가 없으면 말하고 들을 필요도 없게 된다. 모두가 각자 완벽한 존재인데 무엇하러 서로 소통하나? 쓰는 행위는 말할 필요도 없겠다.


(#5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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