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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전쟁 #1/4

일상으로의 회귀 - 정치·사회편

by 마지막 네오

경고 :

이 글에는 심한 비속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잘 들리지 않는 비속어가 아니라 글로 기록된 리얼한 비속어이므로 잘 못 알아들을 리가 없는 말입니다.
또한 메시지 전달을 위한 차원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된 것이므로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원치 않으시는 분은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01.


밤이다. 잠이 안 온다. 기괴한 소리에 잠이 깨어 멍하니 앉았다. 방 안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눈을 감으면 귀가 예민해져서 별의별 소리가 다 들린다.


가깝게는 눈앞에 켜져 있는 컴퓨터의 팬 소리부터 거실에서 들려오는 TV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선선해졌건만 며칠째 계속 틀어대는 옆집 에어컨 소리, 아들놈 방에서 들려오는 게임 사운드, 이 시간에 누가 돌려대는 것인지 모를 세탁기 소리, 자동차 지나는 소리, 배달 와서 세워둔 오토바이 엔진 소리, 거리에서 떠들어대는 사람들 소리. 심지어 귀뚜라미 소리까지 왜 이렇게 큰 거냐? 아! 괴롭다.


아직은 조금 덥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열어놓은 창문과 방문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들이다. 다가구 건물이라 가끔 아래층에서 쿵쾅거리는 파악하기 어려운 소음까지 합치면 거의 소음 천국이다.


밤 10시가 지났음에도 도시 빈민가 한복판에 앉아 눈을 감으니 소음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갖가지 소리들이 귀를 괴롭힌다. 듣고 싶지 않은 소음을 ‘소음공해’라고 하던가. 소음도 공해라고 사회 공통으로 인식한 게 어언 몇 년 전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괜히 멀쩡한 벽을 탁 짚으며 ‘넌 왜 있는 거냐?’ 물어본다. 가난한 자의 귀는 오늘도 괴롭다.


그래도 오늘은 싸우는 사람들이 없어 다행이다. 툭하면 주차 문제로 야심한 밤의 공기를 가르고 들려오는 거친 욕설에 자려고 누웠다가 깜짝 놀라서 창밖을 내다보기를 여러 번이다. 뭐, 잠이 전혀 오지 않는 날은 나름 싸움 구경도 재미있기는 하다.


우리 동네에는 주인공도 있다. 한 30대 중반 정도 보이는 옆 건물의 옆 건물에 사는 사내가 자주 등장한다. 머리가 하얀 노인이든 앞 건물에 꼬장꼬장한 건물 주인아주머니든 상관없이 일단 ‘야~ 니가 뭔데…’로 말을 시작하는 대한민국의 과잉적으로 건강한 젊은이다. 선선해졌어도 늘 반팔 차림에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하며, 자신의 몸이 피부인지 스케치북인지 헛갈렸는지 온통 그림을 그려놓은 친구다. 무려 ‘차카게 살자’도 아니고 용 문신이다. 지난여름에 지나가다 슬쩍 본 적이 있는데 돈 많이 들었을 것 같더라.


그가 몰고 다니는 오토바이는 꽤 비싸 보인다. 한 세평? 그 정도 크기의 월세방에 살지만 오토바이는 비싼 것 같다. 아마 돈 벌어 모두 거기에 투자한 모양이다. 할리 데이비슨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조된 엔진을 걸면 우리 집 유리창까지 흔들리기 시작한다. 분명 불법 개조겠지만 경찰에 신고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언젠가 누군가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경찰이 왔었고 오토바이를 살펴봤다. 조용히 주의를 주더니 5분도 안 되어 돌아갔다. ‘왜 왔지?’하는 생각이 들더라. 만일 내가 신고했더라면 오히려 우리 아이들에게 보복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새로운 신경증으로 고생 좀 했을 것이다.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그냥 지팡이만도 못하다. 지팡이는 무기로라도 쓸 수 있지만 이건 뭐 그냥 무용지물이다.


(#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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