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회귀 – 생활·문화편
그럼 어떻게 하면 서로 존중할 수 있을까? 나아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이해라는 것은 한 번이라도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데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한다.
참, 어찌 생각해보면 이것은 태초에 사람이 생겨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풀어내고자 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장 큰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재와 바보가 종이 한 장 차이이듯 격차가 큰 모든 것은 의외로 서로 가까이 맞붙어 있다.
개인화가 화두인 현재, 그리고 미래. 개인화가 아무리 강해진다 한들 세상에 홀로 남지 않는 이상 사람은 사회를 이루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먼저 확실하게 인식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므로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나 아닌 타인에 대하여 의식 체계를 명확하게 할 필요성도 있다.
갈라서서 대립할 것인가 화합하여 서로 사랑하며 돕고 살 것인가? 질문 안에 답이 있다 했다. 결론은 질문을 던지면서 이미 나와 있는 것이다.
대립하며 싸우고 전쟁하고 죽이고 말살하여 혼자 남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사실 그런 단계까지 생각하면서 그런 짓을 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나를 이해하는 사람만 남기고 대립하는 사람을 모두 죽여버리면 과연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두 사람이 있으면 두 개의 생각이 있고 천 명의 사람이 있으면 천 개의 서로 다른 생각이 존재한다. 완전히 같은 의견의 일치는 처음부터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돌이킬 수 있는 실패와 돌이킬 수 없는 실패가 있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돌이킬 수 있는 실패에 반성하라는 뜻이다. 돌이킬 수 없는 실패는 말 그대로 후회고 반성이고 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가족의 의미가 많이 퇴색하고 있다. ‘가족’만을 따로 떼어 생각하면 변화에 맞춰가는 것이 맞는 것이라 할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의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글 서두를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한 이유가 바로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이다. 가족은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공동체다.
시대적 변화 또한 무조건 새로운 것만 선호하여 받아들이고 오래된 것은 배척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새로운 것은 개선되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선호하는 것이고, 옛것은 녹슬고 썩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옛것 중에서도 배울 점이 있고 새로운 것 중에도 악한 것이 있다.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나쁜 것은 배척한다. 단순한 실용주의적 개념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개인화든 소형화든 어떤 변화든 간에 생각하고 알아보고 파악해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 자식의 관계, 가족의 형성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되어 있다.
어떤 영화에서 이런 대사를 들었다. “책임도 못 질 거면서 도대체 왜 나를 낳았어!”
부모도 선택해서 낳은 것은 아니다. 삶이 만만치 않고 때로는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들다. 그렇다고 잘못된 생각과 판단을 통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고 행복해지는가? 더 불행해지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상호 이해’가 필요하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욱. 혼자서 이미지로만 갖는 상대방은 실재하지 않는다.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자. 말이 통하지 않든, 화가 나든, 그것도 모두 과정의 일부다.
세상에 태어났다고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성장 과정을 거치며, 삶을 살아가며 알아가고 깨우치는 과정에서 비로소 사람이 된다. 죽는 순간까지 사람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 존재도 많다. 내가 스스로 어떤 주장을 펼칠 수 있다면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춘 것이다.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자본주의 사회를 이룬 현재의 사람들은 그런 가족적 토대마저 잃어가고 있다.
개개인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고 고민할 때 상호 이해의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머릿속 생각을 꺼내어 글로 바꾸는 작업은 할수록 더욱 힘든 것 같다. 그러나 두서없고 난해하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의미를 새기면서 천천히 생각하면서 다시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당장 오늘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