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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Oct 27. 2022

비상선언(2022) #4/12

환자는 많고 의사는 부족하다

√ 내용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은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네이버영화


06. 환자는 많고 의사는 부족하다.


영화에는 국토부 장관과 다른 고위 관료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대응을 의논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에서 류진석의 어머니도 꽤 유망한 미생물학자였으며 1994년 미국으로 갔다가 2002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유는 아들 류진석의 공부를 위해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고도 한다. 그 어머니가 올 2월에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전한다.


엄청난 부자든 엘리트이든 권력자든 아니면 가난한 서민이든 상관없이 병이 들면 똑같다. 대통령이든 국왕이든 가진 권력을 총동원한다 한들 의사 앞에서는 굽신할 수밖에 없고, 제발 병을 낫게 해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물론 일반 서민들보다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동등하다.

아픈 사람이 가족 중에 누군가인 경우 나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지켜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너무나 무력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외국보다 건강보험 체계가 잘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병원이나 의료시스템이 얼마나 부실하고 권위적인지 경험하게 된다.

나 역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오가는 동안 의사나 간호사와 싸우는 환자 가족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침착하고 최대한 이해하고 따르려 마음먹었던 나 역시도 한두 번은 흥분해서 따지고 든 적도 있다.


가족에게는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이 그들에게는 그저 때로는 이것저것 실험해볼 수 있는 마루타(실험 대상)이기도 하고, 어차피 죽음에 가까워진 한낱 수입원에 불과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물론 모든 의료인을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참된 마음으로 의술을, 간호를 하시는 분들도 많다. 그저 전반적인 세태가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의사 한 명당 맡겨지는 환자의 수가 너무 많다. 그렇다 보니 의사도 사람인지라 기계적으로 변해간다. 그 많은 환자 모두에게 어떻게 인간적으로 다가서며 진료를 볼 수 있겠는가?

가끔 TV를 통해 시골 의사들의 행복한 진료를 봐도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큰 병원일수록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 사는 도시에만 건립된다. 그래야 수요가 있고 병원을 키워갈 수 있으며 수익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 역시 이름나고 큰 병원에 입성하기를 꿈꾸지 시골이나 농촌에 개업하는 것을 꺼린다.

사람 생명을 다루는 의학마저 자본주의적 경제 관념에 맞추어 운영되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에 의해서 현재도 의사의 수는 늘어나지 못하고 있다.


(#5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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