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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Oct 27. 2022

비상선언(2022) #10/12

희생과 선량함에 대한 낯선 시선들

√ 내용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은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네이버영화


12. 희생과 선량함에 대한 낯선 시선들


이건 영화다. 하나의 이야기다.

주인공 인호(송강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행기에 있지 않고 지상에 있었다. 비행기에 탑승한 아내를 구해보겠다고 발을 동동 구른다. 급기야 확실하지도 않은, 마지막 희망인 치료제를 자신의 몸에 투여하여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그가 한 행동이야말로 용기이고 희생이다. 그 행동은 첫째로 아내를 구하기 위한 행동이고, 둘째로 아내만이 아니라 탑승객 모두를 살릴 수도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그것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걸었기 때문이다.


만일 인호가 극복하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죽고 말았다면, 절망으로 가득한 상황은 시간이 멈춘 듯 이후 쭉 이어질 것이다. 아마 온 사회, 국가 전체로 암처럼 퍼져나갔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바이러스보다 이것이 더 무서운 결과일지도 모른다.


비행기 착륙을 결사반대했던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두가 죄책감에 빠져 남은 생을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겹다는 둥, 신파라는 둥 말하던 현실 사람들은 또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다. 아마 또 다른 명목을 꺼내 들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자신들은 또 다른 파티를 벌이고 있으리라.


누군가는 지겨워 죽겠다고 말하는 세월호 사건을 다시 꺼내본다.

세월호 사건에서 절망에 가득한 사람들은 국가로부터 외면당한 뒤 죽어갔다.

구할 수 있었음에도 구하지 않은 것그게 팩트다. 그 절망과 아픔이 여전히 사회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누군가는 지겹다고 하고 누군가는 그만 좀 울궈 먹으라며 외면하지만, 그런 소리는 사실 모두가 느끼고 있는 죄책감과 진실에 비하면 모기가 왱왱거리는 소리만도 못하다.

그것은 거부할 수도, 바꿀 수도 없는 진실을 외면한다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재혁의 딸 수민이는 아토피가 심해서 친구들에게 외면당했다. 아직 어리긴 하지만, 그런데도 자신의 안위보다 아빠한테 옮겨갈까 걱정하는 착한 심성을 가진 아이다.

영화에서는 수민이에게 생겨난 수포를 발견한 남자가 재혁과 수민이가 비행기의 뒤쪽으로 가야 한다고 하는 장면에서 수민이가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수민이에게 이런 시선은 익숙한 것이었으리라. 아픔이 많은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빨리 성숙한다.

아파본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을 볼 수 있고, 절망을 겪어본 사람만이 희망에 감동할 수 있다. 달리 설명하자면 빨리 성숙했다기보다 그만큼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내면서 성장했다고 말하는 게 맞는 것이리라.


보통 이런 경우를 놓고도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데, 수민이가 꼭 아이여서가 아니라, 수민이는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적인 사람이고, 류진석은 비슷한 상황에서 자신만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수민이는 오히려 아빠를 설득해서 그냥 뒤쪽으로 가자고 말한다. 재혁이 뿌리치고 앞으로 가려고 하자 반발이 거세고, 이에 울먹이며 수민은 말한다.


‘아빠 우리 그냥 저쪽으로 가자. 그냥 가자…’


사실 누구보다 상황 파악이 정확하고 느낀 마음에 충실하고 솔직한 것은 수민이었던 것이다. 그런 착한 심성을 가진 아이가


‘아빠, 우리 안 내리면 안 돼? 친구들이 나 때문에 아픈 거 싫어. 맨날 아토피… 친구들에게 전염될까 얼마나 무서웠는데…’


라고 말하는 것이 어째서 신파로 받아들여지는 것인가?


또 대사를 좀 더 세밀하게 봐야 할 필요도 있다. 기내에 단 한 명 있는 의사(문숙 연기)에게 누군가 묻는다.


‘의사 선생님, 저희 내리면 살 수 있어요?’


답이 없다. 즉 살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상의 사람들은 자신들에게까지 피해가 생길까 두려워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이제 비행기에 남은 생존자들이 느끼는 마음은 아까 수민이가 느꼈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낯선 시선을 보내던 사람들이 이제 같은 시선을 받는 자리에 놓인 것이다. 이건 현실이자 혹독한 딜레마를 유발한다.


(#11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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