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 배제된 비평은 인공지능도 한다
일반인들과 달리 판단하고 선택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정부)마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탑승객들이 먼저 합의해서 착륙하지 않겠다고 알리는 것이 왜 신파적 설정인가? 설사 신파라고 해도 이게 왜 비판받아야 할 상황인가? 똑같이 뛰는 심장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이해해보려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탑승객들은 각자 가족과 마지막 통화를 한다. 눈물이 흐르고 슬픔이 넘쳐난다. 사랑하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마지막…
이 슬픔과 눈물을 그저 싸구려 ‘신파 쑈’라고 폄하하는 사람은 눈물이 없나? 감정이 없나?
어떤 작품을 대할 때, 지식을 동원하여 공학적이고 논리적인 ‘분석’이나 사회적 비판을 담아 ‘비평’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전에 우선되어야 할 ‘공감’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다면 그 비평 역시 공감을 얻기는 힘들 것 같다.
나름 냉철한 시선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바라본다고 자신의 똑똑함을 과신하고 있겠지만, ‘공감’ 없이 머리로만 하는 ‘이해’는 사람의 삶을 약간 복잡한 수학 공식 정도로만 바라보는, 아직 한참 뒤떨어진 인공지능 수준의 ‘인조 인성’만도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에이~ 영화잖아. 뭘 영화 가지고 그렇게 흥분하고 그래. 그 사람들이야 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중도를 지켜야지. 공평하게…”.
맞다. 생각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무엇이 중도이고 공평인가? 무조건 반반 딱 나눠서 저울추를 맞추는 것이 중도이고 공평한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나는 그런 중도와 공평에는 반대한다.
앞서 말했지만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잘못된 것은 싸워서라도 고쳐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상황을 가슴으로 느끼기보다 ‘신파 쑈’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시체 장사’ 운운하던 인간답지 못한 것들과 무엇이 다른가?
자기 자신을 판단하는 것이 아닌, 작품이 되었든 남이 되었든, 거기에 대해 말하는 비평은 존중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조금도 완벽하거나 영화 제작 등에 관한 지식을 섭렵한 사람은 아니다. 전문성을 따지자면 바로 ‘깨갱’ 하면서 꼬리를 말아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영화에 대한 기술적인 전문성이나 영화에서 표현한 주제에 대해서 학자로서 전문가로서 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작품을 대면하고 평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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