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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Oct 27. 2022

비상선언(2022) #9/12

절망과 딜레마

√ 내용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은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네이버영화


11. 절망과 딜레마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얘기하자면,

바이러스가 퍼진 기내의 탑승객들은 미국 공항에 내리는 것을 거부당한다. 회항하라는 권유에 비행기를 돌려 일본으로 향하지만 일본 역시 치료제의 진위를 거들먹거리며 자위대를 띄워 위협한다. 착륙을 강행하려 하지만 결국 전투기의 위협으로 기수를 돌린다.

이제 연료조차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고, 기내의 승객들 다수는 죽음을 맞이했다.

미국과 일본이라고 무조건 욕할 것은 아니다. 차분하고 합당한 생각으로 판단하자면, 그들은 자국민의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는 미국,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호불호와는 상관없는 결정이다.


문제는 마지막으로 믿고 있던 대한민국이다. 탑승자들이 나고 자란 조국이다.

던져진 딜레마가 너무 강했던 것인가?

코로나19를 거쳐온 사람들의 집단 이기주의라고 몰아붙인 것이 잘못된 것일까? 조국마저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이들을 외면하는 선택을 한다.


오래된 항공기를 타고 우주로 나갈 수도 없고...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면…

절망의 구렁텅이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어쩌면 쉽게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자신의 생을 포기해야 할 만큼 절망을 느낀다면, 그 순간에는 우리가 불러 외치던 수많은 것들이 다 무시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는 사람들이 착륙하지 않기로 마음을 모은 데는 구인호의 아내 혜윤의 말이나, 재혁의 딸 수민의 말이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앞칸과 뒷칸으로 사람들을 분리해서 내쫓던 남자 같은 경우 길길이 날뛰어야 맞다. 그런데 그조차도 그러지 않았다.


이것은 눈물을 짜내기 위한 희생이라는 지지부진함을 강조했다기보다는 나 아닌 타인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높은 정신적인 부분을 나타낸 것이다.

이런 정신마저 고리타분한 지겨움(뇌절?)으로 바라본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조금 더 나이를 먹었다고, 어른인들 그 절망 안에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의 눈높이에서 생각할 것이다. 이런 순간에는 애고 어른이 분리되지 않는다. 그저 모두가 절망에 빠진 나약한 인간일뿐.


이것을 사회적, 시대적, 정치적 감각으로 평가해서 풀어내려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고 본다.

극 중에 류진석이 죽기 전에 부기장 최현수에게 던지는 말을 들어보라. 만일 탑승객들이 ‘국가고 나발이고 우리는 무조건 착륙할 것이니 쏠 테면 쏴봐라’는 식으로 행동했다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그들은 이기적이었다?’, ‘무식한 자가 용감하다?’

하나의 류진석이 다수의 류진석이 되었다는 것 외에, 사회적인 님비현상을 가진 인간들을 향한 폭주? 복수? 그렇게 해서 인간 자체, 우리 사회 자체에 남겨지는 것은 무엇일까? 역설적 교훈이라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10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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