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면 알아야 할 이야기 창작 완벽 가이드
‘극적 질문’이란 이야기 전체에 불을 지피는 질문을 말한다. 대니얼은 이를 ‘극적 중심 질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가는 중심에는 핵심이 되는 ‘극적 중심 질문’ 있고, ‘극적 부차 질문’과 ‘극적 하위 질문’이 있다고 설명한다. ‘극적 부차 질문’은 줄거리 전체의 개념과 분위기를 보충하는 역할을 하는 질문이다. ‘극적 하위 질문’은 뉘앙스와 결을 덧붙이고 이야기의 작은 부분을 만들어내는 역할이다.
흠… 대니얼이 거짓말한 것인지 아니면 번역하신 분이 어렵게 번역을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거 처음과 얘기가 다르다. ‘일상적이고 쉬운 언어’를 사용했다더니 ‘이게 일상적이고 쉬운 언어인가?’ 하는 생각이다.
아마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명확하게 와닿는 단어로 쓰였지만, 그것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생긴 부작용 같다. 우리말의 특징은 ‘극적 중심 질문(劇的中心質問)’과 같이 한자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사전에 풀이된 말을 모두 나열해야 하므로 하나의 명사형으로 표현된 단어도 엄청나게 긴 설명으로 바뀌어버릴 것이다.
극적 질문을 국어사전을 참고해서 우리말로 풀어보면 “큰 긴장이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물음”이 된다. 그럼 나름 쉬운 일상적 언어로 표현된 것이 맞는 말인가. 에휴~ 어렵다.
또 교과서 방식을 비판하더니 각 장마다 마치 외워야 할 무슨 공식처럼 줄줄이 줄을 세워놓았다. 영어단어는 짧기라도 하지… 이건 뭐… 나처럼 머리가 굳기 시작한 중년에겐 무리인 것 같기도 하다.
맞다. 두 번째 장을 펼쳐 읽다가 이미 ‘아우~씨, 괜히 읽기 시작했네’하는 생각을 했다. 외국 작가가 써 놓은 글을 우리말로 번역해 놓았을 뿐이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니얼의 원칙이라는 것도 너무 당연한 것들이었다.
표현이 다르고 세부적인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동안 겪어봤던 국내 글쓰기 책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당연한 원칙을 줄줄이 나열하며 ‘지침서’ 또는 ‘바이블’이라는 말로 상품화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질 못했다. 뭔가 그럴듯한 거창한 제목에 낚이는 나 같은 사람도 많을 것이고, 이제껏 없었던 획기적인 원칙을 통해 깨달은 바가 크다며 호평을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이후의 장을 꾸역꾸역 모두 읽어 나갔다. 왜냐고? 그냥 병이다. 불치병.
(#6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