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래된 노트
햇살마다 웃음 가득했던
지난날 어느 해
길고 긴 이야기의 처음을 만들었는데
만남이란 이별을 잉태한 무엇이던가
결코 긴 이야기는 아니었던 거다.
바다마다 깊지 못했던
지난날 어느 여름
한 길가에 도달하였는데
눈빛만 쭈뼛대곤 묻지 못했더니
결코 무슨 만남일 수 없었던 거다.
시곗바늘 휘도록 짧았던
지난 시절 어느 날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기다렸는데
그 길로 님 지나가도 침묵하더니
결국 차가운 눈빛 던지곤 가버린 거다.
이제 홀로 강가에 앉으니
물속 비친 하늘에 이야기하고,
만남일 뻔했던 이별을 만들지 못하도록
만남을 하지 않으니
서운함은 슬픔 전에 기쁨이던가
아니면 너무 슬퍼 허무였던 거다.
(1987년 11월 이후, 어느 날부터 쓴 <나의 오래된 노트>에서 꺼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