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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Dec 31. 2022

삶이 고독하고 외로운 이유

황야의 스노 - 러브, 데스 + 로봇 시즌2(2021)

√ 스포일러 최대한 적게 써봤습니다.


☞ 러브, 데스 + 로봇(Love, Death + Robot) 시즌2 중에서
황야의 스노(Snow in the Desert)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니메이션 | 8부작 옴니버스
☞ 오픈 : 2021년 5월
☞ 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 작품 관련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사막처럼 메마른 황량한 외계 행성. 한 도시에 스노가 나타난다.

스노는 지구로부터 들여오는 뭔가 귀한 물건을 구매하고 주점에 들른다. 엄청난 현상금이 걸려있는 스노를 잡으려고 현상금 사냥꾼들이 몰려들어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다. 스노는 위기에 처하지만 지켜보고 있던 히럴드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다.

히럴드는 처음부터 목적을 가지고 스노에게 접근했지만 그와 함께 지내는 동안 평범하고 인간적인 스노에게 연민을 느낀다.

한편 스노에게 현상금을 걸었던 배리스는 직접 용병을 거느리고 스노를 습격한다. 스노와 히럴드는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데…




에피소드 <황야의 스노>는 첫 장면에서 애니메이션과 실사가 합쳐진 형태인 줄 알았다. 그만큼 그래픽이 거의 실사에 가깝다.


현상금 사냥꾼들은 스노를 ‘알비노 인간’이라고 부른다.

‘알비노’는 백색증(Albinism)을 말하는데, 유전자 돌연변이의 한 유형이다. 백색증은 멜라닌 합성 결핍으로 인해 눈, 피부, 털 등이 색소 감소에 의해 하얗게 보이는 선천성 유전질환이다. 피부를 보호하는 멜라닌의 결핍으로 자외선 방어 기능이 떨어져 햇볕에 화상을 입기도 하는 등 햇볕 노출에 매우 취약하다. 전 세계적으로 백색증의 발병률은 1만 7천 명 당 1명꼴로 희귀한 병에 속하며, 2022년 현재, 치료법은 없다. [참고 : 나무위키, 네이버 지식백과]


현상금 사냥꾼들과 주점에서 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보면, 스노는 엄청난 속사를 구사하는 특별함을 가졌다거나 슈퍼히어로와 같은 초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현상금 사냥꾼이 발포한 총에 한쪽 팔이 날아가고, 이후 흠씬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보면 슈퍼히어로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모습이다. 보통 스페이스 오페라의 주인공이면 뭔가 초인적인 능력을 예상하지만, 스노의 능력은 타인을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폭력적인 능력이 아니다.


작가는 스노에게 알비노(백색증)라는 돌연변이 특이점에 한 가지 상상력을 덧붙임으로써 ‘초재생’이라는 능력을 부여했다. ‘초재생’은 육체의 일부가 손상되었을 때 빠르게 재생되는 능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가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 한 죽지 않으며, 어느 시점 이후로 더 이상 늙지도 않는다.

‘죽지 않는 인간’을 다룬 점에서 <팝 스쿼드>와 유사하지만, 이 작품에서 ‘영생’은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


앞서 다룬 에피소드 <팝 스쿼드>에서는 과학 발전의 결과물을 토대로 더 이상 늙지 않고 영생하고자 하는 인간 내면의 욕망에서 파생되는 이기적인 폭력에 대해 그렸다면, <황야의 스노>에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변형된 돌연변이적 특성으로 인한 불사(不死)를 통해 삶의 의미에 대하여 질문하고 있다.


<팝 스쿼드>에서는 자신들의 영원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더 이상 새 생명의 발생을 억제하는 제도를 실행한다는 인간의 이기적 측면을 부각했다면, <황야의 스노>에서는 불사의 능력 때문에 죄가 없음에도 쫓기고, 고독하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인물의 인간적 애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같은 ‘죽지 않는 인간’을 다루고 있지만 하나는 비윤리적인 지속을 도모하기 위한 사회적 폭력과 강압을 보여주고 있고, 다른 하나는 반대로 홀로 외롭고 고독하게 지내면서도 남들과 다른 특성 때문에 사냥당하고 있다. 여기에서 공통된 부분은 모든 갈등의 원인이 ‘영생’에 대한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팝 스쿼드>에서 형사 브릭스가 ‘고인 물’이 되어버린 기득권 세력에 의해 통제되는, 인간의 기본적인 ‘삶의 의미’에 대해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하며 겪게 되는 ‘가치관의 혼란’과 ‘정체성 분열’을 겪으며 극도로 고독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과 스노가 몇 백 년을 살아오면서, 123년 전에 자살한 아내를 여전히 그리워하며, 다른 존재와 섞여 살아내지 못하고 고독한 삶을 살아왔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 이외의 타인들과 다르다는 점, 그것이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그것으로 인해 외롭고 고독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옛날, 사람이 많지 않을 때 느껴야 했던 외로움과 시대가 발전하고 도시가 생겨나 그 안에서 다수와 살아가고 있음에도 느끼게 되는, 극도의 외로움과 고독은 무엇이 다른 것이며, 왜 생겨나는 것일까? 또한 그것을 보듬고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위의 예나 많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음에도 외롭고 고독한 개인을 떨쳐낼 수 없는 이유로 ‘다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대중적인 것, 유사한 것, 모나지 않은 것에 집중한다. ‘트렌드’, ‘유행’, ‘대중화’, ‘시대 흐름’과 같은 정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런 이유가 있다.

모두가 남들이 하는 것은 나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은 ‘사회’라는 공동체에 포함될 수 있는 일종의 ‘합격선’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남달라야 한다’는 말은 곧 ‘성공’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만, ‘튀지 않아야 한다’는 ‘일반화 또는 대중화’를 동시에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모순적인 압박으로 인해 사람의 삶은 고달프다. 10명이 모이면 10가지의 다름이 있는 것이 당연한데, 11번째 사람이 그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10명이 허락하는 공통점을 찾아 그 안에 속해야만 한다. 만일 11번째 사람이 기존의 10명과 다른 독자적인 면이 있다면 그는 혼자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일명 ‘왕따’가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10명은 모두 온전히 유사하기 때문에 사회를 이루고 사는가? 아니다. 그게 순수하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죽은 사회’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본래의 자신과 다른 각자의 페르소나를 갖게 되는 것이다. 11번째 사람 역시 가식적인 페르소나로 자신을 꾸민다면 그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솔직한 내면은 숨겨지고 세상은 거짓과 위선이 허용되면서도 서로 가식적인 미소를 그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누구도 행복하거나 만족할만한 삶을 영위하지 못할 것이며, 개인 내면은 모두 외롭고 고독하다.


성숙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이런 소외를 안다. 스스로 그 경험을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아픔이 없는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소외되고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 절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연의 아픔을 아는 사람만이 사랑의 소중함을 아는 법이고, 잃어본 사람만이 소중함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다.


히럴드는 스노처럼 오랜 시간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아픔을 가진 사람이다. 그녀는 스노의 외로움과 고독을 이해한다. 스노를 위로하며 함께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은 현대 문명 밖으로 밀려나며 버려진 야생 그대로의 늑대와도 같다.


이 작품은 <황야의 스노>라는 제목에서도 풍기듯이 미래의 다른 행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옛날 서부영화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황량한 사막과 현상금 사냥꾼, 허름한 주점에서의 총격전, 약육강식의 법칙이 허용되는 무법의 시대를 회고한다.

거기에 스페이스 오페라 특성도 가미되어 있다. 디스토피아적 환경을 가진 행성, 외계 생명체와 공존하는 퇴폐적인 도시, 유유히 나타나는 미녀 조력자, 고독하지만 자신만의 신념을 가진 영웅.

특히 배리스가 용병을 이끌고 와서 스노와 히럴드를 습격하는 장면에서 스노가 용병들에 맞서 싸우는 방식은 영화 <리딕> 시리즈를 떠오르게 했다.


실사에 가까운 그래픽, 고전 서부영화와 비슷한 배경, 스페이스 오페라 방식으로 그려진 미래, 액션, 갈등, 포용 등의 적절한 구성, 거기에 철학적 질문을 담은 주제까지. 상업적인 상품으로 갖춰야 할 모든 것이 종합선물세트처럼 잘 준비된 그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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