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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Jan 01. 2023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할 것!

풀숲 - 러브, 데스 + 로봇 시즌2(2021)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러브, 데스 + 로봇(Love, Death + Robot) 시즌2 중에서
풀숲(The Tall Grass)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니메이션 | 8부작 옴니버스
☞ 오픈 : 2021년 5월
☞ 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 작품 관련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엄청나게 자란 풀들이 가득한 평야를 지나던 기차가 풀밭 한가운데서 잠시 멈춘다.

시간은 자정을 넘은 밤 0시 40분. 깨어있던 레어드는 기차가 멈춘 이유가 궁금해 기차 밖으로 나와 서성이고, 별일 아니라며 금방 다시 출발할 거라는 차장의 답변을 듣고 홀로 담배를 피운다.

그때 사람 키보다 큰 풀이 숲을 이룬 곳 안쪽에서 뭔가 빛난다. 레어드는 홀린 듯 풀숲으로 들어서고 빛나던 곳을 찾으려 한다.

멀리서 기차가 다시 출발한다고 소리친다. 그러나 레어드는 방향을 잃어 기차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거기에 더해 공포가 엄습해 오면서, 풀숲 안 어딘가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악령들!

어느 쪽이 기차로 돌아가는 곳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악령들이 득실대는 풀숲에 남겨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레어드는 악령들에게 쫓긴다. 과연 레어드는 살아서 기차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이번 에피소드 <풀숲>은 마치 인상파 화가의 작품이 움직이는 것 같은 그림체다. 독특한 그림체는 공포 스릴러라는 장르를 화면 내에서 극대화하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러브, 데스+로봇> 시리즈에서 종종 선보이는 공포물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체를 등장시키기는 하지만, 실제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것은 괴물체의 생김새나 행위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보다는 대부분 인물의 심리적 불안감을 표현하는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시즌 1>에서도 <독수리자리 너머>나 <목격자>, <구원의 손> 등의 작품에서도 주인공이 심리적으로 느끼는 불안이나 공포를 표현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실제가 아닌 애니메이션에서 괴물에 의해 살해당하는 장면 자체를 그려내는 것보다 보는 이로 하여금 더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즉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무서움보다 상황에 대한 상상을 촉발시킴으로써 심리적 두려움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풀숲>은 거의 스토리가 없는 단편적인 상황의 묘사다. 전혀 어떤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 같은 편안한 상태에서 우연히, 또는 너무나 갑자기 변하는 현실을 주인공 레어드의 표정과 행동, 눈빛 등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인간 내면의 공포를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진짜 무서운 것은 평온한 일상이 갑자기 변하면서 벌어졌을 때 황당하고 두려운 것이다. 아무런 준비나 대처가 없는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축제를 즐기러 놀러 간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간이던 거리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공포의 공간으로 변했을 때, 그런 순간에 느끼는 혼란과 공포는 더욱 컸을 것이다. 또한 일상이 공포의 공간으로 변하고 참사로 이어졌음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흘러가는 세상 자체가 그날의 이태원 골목길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본다.


공포를 느끼게 되는 순간과 일상의 차이는 다르지 않은 한 공간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점과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것보다, 내면에 쌓여가는 것이 모든 것을 바꿔놓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풀숲>의 괴생명체가 원래 인간이었다는 차장의 얘기. 그들이 길을 잃고 떠돌다가 그렇게 되었음을 암시하는데, 겉보기에는 평온하고 조용한 풀숲 속에 그들의 영혼이 자리하고 있음과 생과 사를 가르는 경계의 문이 열렸다는 말은 거대한 ‘풀숲’ 전체가 바로 ‘무덤’을 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생과 사의 경계, 살아있는 사람이 가장 무섭고 두려움을 느끼는 곳은 바로 그 지점일 것이다. 경계 이쪽의 ‘생(生)’과 경계 저쪽에 자리한 ‘사(死)’는 풀숲의 모습처럼 평상시에는 평온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또한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이는 평소의 일상과, 동시에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만 하는 순간이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어쩌면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향해 달리는 기차에 탑승한 손님으로, 먼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절대로 레일을 벗어나 홀로 걸어 걷지 말라, 그대도 길 잃은 영혼이 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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