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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Jan 03. 2023

그것은 식은땀 나는 경고다

생존의 공간 - 러브, 데스 + 로봇 시즌2(2021)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러브, 데스 + 로봇(Love, Death + Robot) 시즌2 중에서
생존의 공간(Life Hutch)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니메이션 | 8부작 옴니버스
☞ 오픈 : 2021년 5월
☞ 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 작품 관련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우주공간에서 전투를 벌이던 테렌스는 전투 중 폭발의 여파에 휩쓸리며 파편을 맞아 근처 행성에 불시착한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구조요청을 하기 위해 마련된 생존 공간 817-RD9G에 도착하지만, 그곳은 오랜 시간 방치된 듯, 심하게 손상된 상태다. 생존 공간의 손상을 임의로 자동 수리하도록 내부에 설치된 로봇이 오류를 일으키며 테렌스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우주공간에서의 전투보다 오히려 더욱 치열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과연 생존 공간에서 테렌스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정말 판타스틱하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해야 할 말인 것 같다. 실사 영화보다 더욱 실사 같은 그래픽은 놀라운 수준이다.

주인공 테렌스의 두려움을 고스란히 투영하는 눈빛이며 긴장감을 표현한 식은땀, 식은땀에 비친 빛의 명암까지 살려냈다. 실존하는 배우가 표정 연기를 해도 이만큼 나오긴 어려울 것 같다 생각될 정도로 캐릭터의 표정과 눈빛 하나하나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기에는 살짝 두려움마저 느껴질 정도다.

짧은 진동으로 반짝거리는 로봇으로부터 방출되는 빛과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서의 움직임 등, 한마디로 정말 경이로운 기술력이다. 머지않아 영화배우들도 밥 먹고 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목숨을 걸고 참전해 드넓은 우주공간이라는 한계를 극복해내는 것도 인간으로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정작 위험한 곳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장소였다. 그러니까 긴장의 끈을 놓았을 때 갑자기 덮쳐오는 돌발상황이 가장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작품이다.


단편적인 상황을 표현한 작품이지만 이것을 조금 색다른 경고 수준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도 그동안 해외 다른 지역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전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내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왔다. 이제 평화로운 생활에 익숙해져 모든 사람들은 전쟁의 징조를 나타내는 위협에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유지하는 상황이 되었다.

긴장감 제로. 그렇게 우리의 일이 아니라는 안이한 생각은 국가 지도자와 정치계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내부에서 파벌을 이뤄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정쟁에 온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실제 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는 것도 금방 알 수 있다.


6.25 전쟁 이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휴전선이 그어진 시점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둘러싼 정세는 실제로 변화되거나 진보하지 못했다. 여전히 언제라도 전쟁이 발발할 위험성이 지구상에서 가장 큰 곳이다.

이후 수십 년이 지났지만, 경제적인 발전에 비해 국가 안보와 진정한 평화 구축을 위한 발전은 거의 없다.

그 이유로 소위 사회지도층 자리를 꿰찬 사람들의 이기적인 욕심과 정치적 이익을 위해 오히려 상황을 이념적으로 이용해왔기 때문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한국 땅의 절반, 남쪽의 대한민국은 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생존 공간과 비슷한 상황인 것이다.


전쟁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그 이후로 현재까지 대한민국 사회는 ‘차별과 편 가르기 등’의 오류로 인해서 전쟁 당시보다 더 위험한 공간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총알과 폭탄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발전 흐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오히려 필수라고 여겨지는 ‘경제’였다. 즉 ‘먹고사는 것’이 바로 ‘생존’과 동의어가 되었다. 현대의 모든 갈등과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이유로 '경제'를 선택했다.


물론 ‘경제’라는 개념 자체를 나쁜 이데올로기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상적인 경제 체제의 허점을 자신의 얄팍한 지식과 권력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흐트러뜨리며 비정상적인 이익을 가져가는 몇몇 몰지각한 사람들을 직격 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삼각형의 꼭대기를 이루는 1%만이 안전한 삶을 누리고 나머지 경쟁에서 밀려난 99%는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러야 한다. 하기 쉬운 말로 ‘빈부격차’를 논하지만, 마치 정형화된 틀과 같이 문제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잘못되어 가는 상황 자체를 인정하고 당연시하는 것이 어느새 일반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를 힘으로 틀어막으려 시도하는 것이나, 화물연대 시위를 공권력과 권력의 힘으로 압도하며, 마치 사회정의를 세운 것처럼 거들먹거리는 것은, 더 이상 갈 곳 없는 약자들로 하여금 ‘생존 구역 밖으로 나가라!’고 밀어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짓이다.


쥐도 구석으로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폭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방식은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되며, 민주적 이념에도 반할뿐더러 인권을 탄압하는 쓰레기 같은 짓거리다.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 내부에서 구성원들에게 세밀한 고통을 남긴다. 또한 불안정한 상태의 외교와 국가 안보는, 언제라도 경제 발전으로 이룩해 온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소멸시킬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에피소드 <생존의 공간>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생존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 기계 오류로 인해 우주 전투에서보다 더 생명을 위협하는 공간이 되고 말았듯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도 오류가 발생한 로봇처럼 행동하는 세력에 의해 폭압과 폭력으로 얼룩져, 숨쉬기조차 어려운 긴장 상태로 퇴보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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