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요? 3
“아빠,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싸워요?”
텔레비전 뉴스에서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고성을 지르며 싸우는 것을 보고 어린 딸아이가 묻는다.
“각자 자신들의 입장이 달라서 그래.”
“국회의원이면 훌륭한 사람 아니에요?”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니?”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높은 사람이고… 모두가 존경하는 훌륭한 사람이잖아요.”
“우리 딸은 대통령 존경하니? 저 국회의원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니?”
딸아이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존경할 수는 없는 거지. 그것은 사람 대 사람으로서 그냥 ‘존중’하는 차원이지 존경하는 것이 아니란다.”
“존중? 존경?”
“그래. 어렵지? 존중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고, 존경은 네 말대로 훌륭한 점을 찬양하여 상대를 대우하는 거야. 분명 차이가 있지.”
“음… 그러면… 어른들은 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훌륭한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라고 해요?”
“그 사람의 직함을 보고 훌륭한 사람, 존경할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은 생각이다. 그리고 세상에 ‘높은 사람’이라는 건 없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해야 하는 거니까.”
“그러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고 배웠는데, 진짜는 그렇지 않은 거 같아.”
“그런 것을 모순이라고 하는데… 세상에는 생각보다 그런 게 많아.”
“그리고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좋은 거라고 아빠가 그랬잖아요. 좋은 건데 왜 싸워요?”
“그렇지. 더 다양하고 많은 생각들에서 좋은 점은 합치고 나쁜 점은 고치고. 그런 과정을 타협이라고 한단다.”
“그럼 타협하면 되는데, 왜 싸우는 거예요?”
“어른들은 때로는 타협보다 싸움을 선택해야만 할 때가 있단다. 분명하게 잘못된 것에 저항하고 고쳐야 할 때가 바로 그렇지.”
딸아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분명하게 잘못된 것은 다 아는 것 아니에요? 다 아는 걸 가지고 왜 싸워요? 우리한테는 매일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면서…”
“그러게 말이다. 결국에는 사람의 욕심이 한도 끝도 없는 탓이겠지만… 서로 다투고 싸우는 것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분명한 것은 반드시 싸워야 할 때도 있다는 거야.”
“피~ 말도 안 돼! 싸우는 건 나쁜 거라고 선생님도 그랬는데. 어른들은 저렇게 싸우면서, 왜 우리가 싸우면 혼내는 거예요?”
“그래 맞아. 싸우는 건 나쁜 거야. 아빠 말은… 그러니까…”
말을 하다 그쳤다. 이어서 하고자 했던 말은 대충 “어른이 되면 참지 말고 싸워야 할 때도 있다는 거지. 우리 딸도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아빠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때가 있을 거야.” 정도였을 것이다.
하나 마나 한 말, 불필요한 말이다.
아주 단순한 질문인데도 명확하게 답변할 수 없다. 원래 단순한 질문일수록 더 어렵다. 그래서 아이들의 질문이 어른에게는 어려운 질문이다.
어째서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대로 된 답변을 쉽게 할 수 없는 것일까?
결코 익숙함으로 굳혀진 사회 폐단의 구조적인 내면을 설명할 길이 없다. 또한 그것을 설명하다 보면 어른으로서 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해지는 자신을 맞이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왠지 현실의 잘못된 것들을 합리화하는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든다. 괴로워진다.
정치(政治).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가진 것. 그래서 그만큼 더 중요하고 모두의 참여와 관심이 있어야 하는 것. 가장 올바르고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모두를 위한 그것.
그러한 정치는 정치(正治, 바른 다스림)나 정치(淨治, 깨끗한 다스림)가 되어야 함에도 부정(不淨, 깨끗하지 않음)과 부정(不正, 바르지 않음)으로 각인되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정치란, 올바르지 못한 이권 챙기기에 따라 조직적으로 세력화하면서, 그 옛날 조폭들이 구역을 차지하기 위해 패싸움을 벌이던 것처럼 변질되고 말았다.
타협과 협력, 국가라는 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 특정 개인이나 특정 세력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그것에 방해가 되는 세력은 모두 ‘적(敵)’이 된다. 그래서 싸움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힘이 아직 부족하다고 보는 어린아이들조차 정확하게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옳고 그름’이다. 올바른 것이 좋은 것이고 잘못된 것은 나쁜 것이다. 좋고 나쁨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어른, 아는 것이 많다고 자만하는 사람일수록 진실을 보기 어려운 법이다. 단순하게 느끼면 알 수 있는 것도 너무 많은 생각과 지식을 통해 보게 되면 복잡해지고 왜곡되기 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