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왜 가난해요?

왜요? 6

by 마지막 네오

6.

그래서 현시점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허울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표면적이지 않은 새로운 계급사회’라고 보는 것이 훨씬 정확한 표현이라고 본다. 즉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가진 것이 없는 사람보다 높은 사회적 계급을 가졌다고 모두가 생각한다.

그들에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개, 돼지, 노예 정도 수준으로 취급되고, 그것은 은연중에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권력자가 목적하는 것도 결국에는 ‘부와 권력’이다. 정치도 결국에는 돈이요, 공부하는 목적도, 운동하는 목적도, 연구하는 목적도… 결국 모두 한 지점으로 모인다. 자본주의의 폐해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렇게 되려 한다면 저항하고 고쳐야 할 가장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은연중에 그것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그 경계에서 상류 쪽으로 포함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는 모순적인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즉 ‘알아서 기어야’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소위 ‘낙수효과’로 불리는 경제 발전 방식은 그 안에서 ‘을’끼리의 박 터지는 싸움을 유발한다. 떨어지는 콩고물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약자끼리 다투는 것이다.

애초에 잘못된 지점을 찾아 개혁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눈앞에 놓인 작은 부스러기에 목숨을 건다.

꼭대기에서 잔에 샴페인을 채우는 권력층은 그 싸움을 즐긴다.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에서 검투사들이 서로를 잔인하게 죽이는 것을 여흥으로 삼았던 심리 그대로가 여기에 투영되어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눈앞의 생존에 급급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잘못된 시스템 자체를 바꿀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기득권과 권력층이 노리는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빈부 격차’ 문제야 전 세계적인 문제이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빈부 격차가 벌어지는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지적하는 이유는, 정상적인 방식에 의해 벌어지는 격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어른들은 다시 한번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답변을 할 수 없게 된다.


“아빠,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해요?”


이런 질문에 일반적으로 나오는 말은


“그건 아빠가 너만 할 때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해서 그래. 그러니까 우리 딸은 공부 열심히 해야지. 이다음에 돈 많이 벌어서 부자로 살아야지”


와 같은 말을 한다.

그러나 나는 ‘가난’을 ‘내 탓이요’ 또는 ‘부모 탓이요’, ‘열심히 살지 않은 탓’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날의 가난은 내 탓도 아니요, 부모님의 탓도 아니요,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아이나 모두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딸아, 우리가 가난하다고 생각해?”

“우리 가난한 거 아니야?”

“왜 그렇게 생각해?”

“음… 내 친구네 집은 우리 집보다 훨씬 넓고 좋아. 걔는 옷도 예쁘고 비싼 거 입어.”

“그렇구나. 그 친구네 집보다는 우리 집이 가난한 게 맞네. 그래서 친구네 집이 부럽니?”

“응. 우리 집도 부자면 나도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그럴 텐데…”

“그렇구나. 하지만 우리보다 가난한 사람들한테 우리가 더 부자라고 자랑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그 친구도 너처럼 우리를 부러워하면서 속상해할 거 아니니.”


해맑은 눈빛으로 대답하는 아이.


“그래도… 부자면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고, 입고 싶은 옷도 다 사 입으면 좋을 것 같은데…”

“물론 좋겠지. 하지만 뭐든지 적당하고 필요한 만큼만 쓰는 게 좋은 거야. 사자나 호랑이도 배고플 때만 사냥한단다. 자기가 힘이 세다고 해서 무작정 다른 동물들을 헤치는 것은 아니란다. 하물며 사람이 동물만도 못해서야 되겠니?”

“에이~ 그게 뭐야. 사자는 예쁜 옷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요 녀석! 결국 예쁜 옷이 갖고 싶은 게로구나!”


지금은 딸아이가 이해할 수 없으리라.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없을 테니까.


초등학생 딸아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세상살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무엇이고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을 전제로 설명해야 하는 세상살이의 복잡성이, 새삼 자라는 아이들에게 밝고 희망찬 내일의 판타지가 아닌 음울한 스릴러나 공포 영화처럼 다가설까, 그것이 두렵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연구하고… 그래, 말 그대로 ‘열심히’ 살아냈을 때 거기에 합당하고 정당한 보상이 주어진다면 누가 열심히 살지 않겠는가?


오천만 원 집 한 채 마련하고자 밤낮없이 일했건만, 오천만 원이 다 모인 날 그 집에 가보니 1억 원이 되어 있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열심히 1억을 모아 가보니 3억이 되어 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변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누구는 전화 한 통화로 주식 시세를 조정해 아무런 고생 없이 몇 시간 만에 수십억을 벌어들인다. 처벌? 그런 거 없다.


바보가 아닌 이상 몇 시간 만에 수십억을 버는 쪽을 택하겠는가, 아니면 평생을 고생해도 집 한 채 마련할 수 없는 내일을 향하겠는가?


빈부 격차?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간격이다. 하지만 부를 쌓은 방식 자체가 권력을 이용한 초법적이고 불법적인 행태는 명백한 범죄다.

이처럼 빈부 격차로 인해 생겨나는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데 힘써야 할 특권층이 오히려 불법을 동원해서 불이 난 곳에 휘발유를 콸콸 붓고 있는 현실을, 권력에 눌려 그냥 눈감고 지켜만 봐야 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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