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막을 허물자!

왜요? 7

by 마지막 네오

7.

앞으로는 검찰이나 법관, 경찰, 군인 등 사회 시스템 안에서 한 분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대통령으로 뽑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데고 데어도 무작정 자기 지역 사람을 뽑아주는 황당한 사람들도 있어 변화가 쉽지 않지만 말이다.

또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 길러보지 않은 사람 역시 자격 미달이다. 본래 한 나라의 왕은 백성을 자식 돌보듯 생각해야 한다고 했는데, 자식을 낳아 길러보지 않은 사람이 그런 감성을 이해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국방의 의무를 다 하지 않은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찬란한 인생의 한 때를 희생하며, 내 가족과 이웃을 위해 헌신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방어막이다.

기득권이자 특권층이 되어버린 현재의 정치 지도자, 국무위원 또는 국회의원들은 이러한 여론에 절대로 귀 기울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격 지침이 만들어진다면 대부분 집에서 허송세월을 보내며 늙어가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며, 자신들이 가진 특권을 내려놓을 생각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합법을 가장한 튼튼한 방어막을 구축한다. 기득권층이자 특권층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거기에 소속되려면 그들 수준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멀쩡했던 사람도 금배지를 달거나 직함이 놓인 사무실 책상에 앉으면 하늘 위에 올라앉은 것처럼 변한다.

다른 일반 시민들은 저 아래 세상에서 거추장스럽게 살고 있는 미물들이 되고, 자기 자신은 신들의 세계에 입성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특권 의식’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사실을 명백하게 서술하자면, 그들에게 주어진 권한은 그 미물들이 준 것이다. 좀 더 살기 좋은 내일을 만들자고 추대하여 일을 맡긴 것일 뿐이다.

왕권 시대도 아니니, 제 마음대로 하라고 왕관을 씌어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격이 없는 사람, 전혀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권한이 주어지는 순간, 바로 그때부터 모든 것이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사회를 이루는 모든 시스템 하나하나가 엉망진창이 되면서 붕괴 수순으로 흘러간다.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런 것으로부터 자기 자신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아예 인식 자체를 못할 수도 있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홀로 살고 있는 사람이 서민들의 애환이나 갈등, 고민 따위를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단지 자신의 권력을 더욱 확고히 하는데 온 신경을 곤두세울 것이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이고, 욕심 많은 사람일수록 더 욕심을 부리기 마련이니까.


민주주의가 위대한 이유는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방향을 이루어가는 데 있다. 이것이 합의다. 제아무리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던 많은 권력자들도, 역사의 흐름 안에서 겨울에 얼었던 서리가 녹아 사라지듯 사라져 갔다는 점을 명심하자.

물론 그 과정에는 많은 소중한 목숨이 희생되며 피를 흘렸다.


그렇게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오늘날 어떠한지 한번 살펴보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물가와 공공요금은 유난히 추운 겨울을 맞이한 서민들의 목줄을 누르고 있고, 못 살겠다고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바탕으로 벌인 노동자 시위는 모두 ‘귀족노조’의 불법시위로 둔갑시켜 ‘법과 원칙’을 앞세워 힘으로 눌러버렸으며, 불편을 호소하는 장애인 시위 역시 공권력으로 틀어막고 있다.


이런 와중에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한에 대응한다며 쏘아 올린 미사일은 거꾸로 날아와 민가 근처에 떨어지고, 북한에서 날려 보낸 드론은 국내 비행금지구역을 시원하게 정찰하고 돌아가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사후대처까지 엉망이다.


놀랍지 않은가!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옛날 독재 정부 시대의 이야기도 아니다.

21세기, 2023년 대한민국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재 상황이다.


거기에 대응해 펴내고 있는 것은, 말 같지도 않은 ‘법과 원칙’을 앞세운 정권 수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 핵폭탄 공동 운용 등과 같은 것들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해도 다른 목적과 욕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하물며 정책이나 대응 자체가 없고, 철학이나 고뇌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무엇이 호전되기를 바랄 수 있는가?


게다가 애초에 이 정부는 국민과 서민을 위하는 마음 자체가 없는 정권이다. 그것은 이 정부가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취한 태도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무엇보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와 노동자 파업까지 힘으로 탄압하는 것은 명백한 헌법 위반이다. 헌법마저 무시하고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입만 열면 들이대는 ‘법과 원칙’의 잣대를 왜 여기에는 대입하지 않는가? 왜 공정해야 할 법을 악용하여 사회를 장악하는가? 법의 공정성마저 훼손해 버리면 힘없는 사람들은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가?


이러한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강력한 보호막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에 의해 둘러쳐진 보호막은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다. 기득권과 특정 세력만이 안전하고 나머지는 희생양이 된다. 그 보호막 안에 들어서는 것은, 특혜이자 다른 차원으로 올라가는 진급이며, 대대손손 이어질 혜택이다. 그러니 권력 앞에 설설 기는 이들이 생겨나고 바른말하는 이들은 모두 음지로 밀려난다.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현재 정치권에서는 눈치보기와 줄 서기가 뻔뻔스럽게 행해지고 있지 않은가!


한때 ‘절대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그들은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럼 지금은 뭐라고 해야 하나? ‘절대왕권?’, ‘절대 신권?’


답답하다. 정말 답답하다.

모두가 잘못된 것을 알고 있고, 세월을 거꾸로 돌이키고 있음도 알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도 알고, 국가적 차원의 위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도 아는데, 근본적인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다.


개혁이 되었든 혁명이 되었든 간에 기득권과 특권층을 둘러싸고 있는 보호막부터 철저하게 허물어야 한다. 최초에 보호막을 출력하고 있는 곳을 제거해야 한다. 그 역할을 하는 이가 누구인지는 너무나 명백하다.


촛불의 염원으로 바꿔놓은 것들이 허물어지는 데는 불과 몇 개월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그 보호막을 끝장내지 못한 상황에서 우유부단하게 지나쳐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난 역사에서 친일파 세력을 끝장내지 못하고 지나쳐 온 후유증을 뼈저리게 치르고 있는 것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