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를 읽고 #2/4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by 마지막 네오

공부? 여기에서 말하는 공부는 구체적으로 ‘학교 공부’를 말하는데, 자본주의가 고도화됨에 따라 ‘학습권’도 빈부 격차에 따라 대물림되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에도, 마치 출발선은 같은데 공부를 게을리해서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 같다.


또한 한 가지만 잘해도 먹고산다.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수많은 달인은 한 가지만 잘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공학이나 수학도 모르고, 영어나 한자도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물론 예를 든 ‘부자’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나름 훌륭한 삶을 사는 분들이다.


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의 문맥적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이 말은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기나 하는 교육방식의 잘못된 관행을 짚은 말인데, 공부 못하는 것이 행복이냐고 반문한다는 말 자체가 이 말이 전달하려는 의도와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러면 나 또한 공부 잘하는 것이 ‘행복’이냐고도 반문하고 싶다. 서울대학교나 카이스트 다니는 학생들은 모두 행복한가? 개인마다 느끼는 ‘행복’은 정형화되어 있는 것이 아님에도 공부 잘하고 못하고를 행복의 조건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부는 사실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책을 읽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어려운 문제를 풀고, 단어를 외우고, 시험을 보고, 새롭게 깨닫는 과정입니다. 그런 공부조차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더 힘든 일, 더 고단한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잘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역설하고자 강조하다 보니 이런 글이 나왔겠거니 생각하지만, 이 부분 역시 꺼림칙하다. 공부를 싫어하거나 잘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읽는다면 자신을 책망하며 비관하게 될 것이다.

과연 사회생활에서 승승장구하여 성공하고 출세하는 바탕이 되는 게 공부하는 이유의 전부일까?


앞서 거친 가시밭길을 지난 사람은 거기에 놓인 것이 가시인지, 잔디인지 이미 알고 있고, 지나왔기에 옛 추억 얘기하듯 말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뒤에 따라오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까짓 것도 못해서 너 뭐 될래?’라고 힐난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학과 공부만 아니라 인성 공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대목이기도 하다.

공부는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한자를 술술 읽어내고,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내는 것도 맞지만, 먼저 인간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겸손할 줄 알고, 타인, 특히 자신보다 약자에 대해 존중할 줄 아는 법이다.


경쟁의 도구로서만 공부를 강조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즉 어떤 상대든 싸워 제압하기 위한 무기일 따름이지 인간과 자연을 이해하고 화합해 낼 수 있는 밑거름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는 스스로 사회적인 성공을 이룬 분이다. 열심히 공부하여 여러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고, 컨설팅 자문에 교수로서 교육도 직접 해보신 분이다. 외국 유학을 통해 경력을 쌓으셨고,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하시고, 많은 책도 내신 분이다. 한마디로 ‘잘난 양반’이다.


반면 나는 이분에 비하면 거의 ‘사회적 낙오자’ 수준이다. 그래서 이분의 글을 읽고 ‘감히! 맞네, 틀리네’ 말할 자격은 없다.

실컷 비판해놓고 꼬리를 내리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현실이 그렇다는 점을 적시한 것이다.


이후에도 ‘1장 공부의 쓸모’에서부터 ‘2장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에 이르기까지 유독 저자 본인의 경험이나 성공담을 많이 거론했다. 마치 “나는 죽어라 공부 열심히 해서 지식도 풍부하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만큼 성공했다. 즉 나는 이만큼 잘났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나처럼 되고 싶거든 열심히 공부해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보게 됐다. 1956년생이면 나보다도 한참 어른이신데, 왜 이렇게 공부를 편협하게 다루셨을까?

어린 학생들에게 공부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일깨워주기 위함이라지만, 그 해저에 깔린 ‘공부=성공=부, 권력’이라는 단편적인 공식을 학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음에 담게 될까 우려스럽다.


“저는 학생 시절 ‘시험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겁니다. 그런데 시험이 없다면 어떻게 사람을 평가하고 구분할 수 있을까요? 요즘 공평과 공정 같은 말을 많이 하는데, 여러분이 생각하는 최고의 공평은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불공평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는 겁니다. … (중략) … 시험은 그나마 가장 쉽고 정확하게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 대목에선 저절로 ‘헉!’하는 소리가 나왔다. 시험이 사람을 평가하는 방법이라니! 기가 막힐 소리다.


먼저 왜 사람을 시험으로 평가하고 구분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그 사람이 지식이 부족하다고 해서 ‘사람으로서’ 평가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애초에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사회적 환경에서 시험을 통해 사람을 골라내는 것, 구분하는 것이 공평한 것이 맞는가? 그리고 사회적 ‘필요성’에 부합하지 않으면 차별당해야 한다는 말인가?

선별되고, 구분 지어지고, 차별받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런 공부 따위 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세상에 1등이라는 자리를 만들려면 반드시 2등, 3등… 꼴등을 줄 세워야만 한다. 1등에게 모든 혜택과 편의가 주어지고 나머지는 부당하게 차별받는 것이 과연 사람으로서 받아야 할 공평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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