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높은 곳에 앉아서 하시는 말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적용해 말한다면,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어느 정도 부유하지 않다면 원하는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다. 왜냐하면 글로 적어내기 쉬운 합리성보다 비합리적이고 부당한 경우가 현실에는 많기 때문이다.
정말 좋은 직업, 좋은 자리는 이미 기존 기득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편법을 이용하여 다 꿰차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참담함을 고려한다면 공평이나 공정은 그림의 떡인 셈이다.
땀 흘린 만큼의 기회와 성실함의 대가가 정당하게 주어지는 사회라면 좋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과 괴리된 교과서적인, 설득력 없는 문구는 젊은 학생들을 기만하는 것이나 다름 아니다.
‘2장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에서 ‘호기심’과 ‘학습’의 의미로 시작해 외국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언어의 중요성을 설명한 부분,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등은 그나마 읽을만하다.
글 중간중간에 덧붙인 단어의 어원이나 한자의 풀이와 해석, 역사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 건강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내용, 충분한 수면과 휴식이 강조된 공부 방법 등은 매우 좋은 내용이고 설득력이 있다.
‘3장 공부를 하는 최선의 방법’ 역시 앞에서 주장하고 있는 ‘성공과 부를 쟁취하기 위한 공부’에서 벗어나, 능률을 높이는 공부법이나 운동과 여유의 필요성, 글쓰기와 독서의 효과, 시간 관리의 중요성,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권장하는 내용으로, 학생들이나 일반인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만한 글이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 떠오르는 첫 느낌은, 저자가 무척 높은 곳에 앉아 뭘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훈계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너무 격상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이도 있고 많은 공부를 하신 것도 사실이나, 높은 곳의 빛나는 의자에 앉아 자신과 같이 되고 싶은가 묻는 방식으로 공부의 필요성을 부각하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책 전체 내용에 걸쳐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부와 권력, 내지는 성공’을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특히 이 책의 주 독자층을 청소년과 학생으로 상정하고 펴는 주장이라면, 학생들에게 잘못된 의식이 주입될까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책의 중간에 ‘공감’에 대해서도 쓰셨던데, 학생 입장에서 이해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성공의 가도를 달려본 본인의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공부=성공=부’라는 공식을 강요하는 방식은 전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학 문제를 풀거나 외국어를 익힌다거나 시험을 본다거나. 이러한 학업으로서의 공부 또는 미래의 직업과 부를 기대하며 거기에 대한 평가를 받기 위한 공부의 필요성은 현실을 어느 정도 적용하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부를 통해 자신의 자존감을 키우는 목적이 막대그래프 키재기에서 이기기 위한 경쟁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의식을 바탕으로 완성된 공부는 사회에 나가서도 똑같이 작용할 것이다. 이기적인 생각과 이해타산, 경쟁, 점수 매기기, 평가, 차별의 정당화 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기 위함이고, 나아가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기 위함이어야 한다. 개인적 명리만을 위한 공부는 덧없는 것이다. 자기 내면을 채워가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알며,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화합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 나가는 것이 공부하는 참된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온전히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으며, 평등한 환경을 기대할 수 있고, 공정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한근태 님의 책 <공부란 무엇인가>는 그런 점에서 별로 권하고 싶은 책은 아니었다.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는 정말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비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책을 읽고 느낀 바를 가감 없이 쓰려다 보니, 저자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이 된 모양새다. 그러나 저자가 주장하고자 했던 바탕은 알아차렸기에 비난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따라서 본인의 이 글에 대한 비판 역시 어떤 내용이 되었든 감수하고자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