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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Mar 12. 2023

13. 하이럼 블록과
비비킹의 ‘루씰’ 그리고 ‘루시’

그룹 ‘봄여름가을겨울’

13. 하이럼 블록과 비비킹의 ‘루씰’ 그리고 ‘루시’까지


[봄여름가을겨울] 4집 앨범 <I Photograph To Remember>을 이야기하면서 하나 빠트린 것이 있었다.

4집 앨범이 음악적 완성에 가까운 앨범이라고 했는데, 거기에는 기타 하나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미국의 퓨전 재즈를 대표하는 기타리스트 ‘하이럼 블록(Hiram Raw Bullock)’이라는 뮤지션이 있었다. 1955년생으로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은 미국인이다. 지난 2008년 7월에 후두암 합병증으로 사망한 천재적인 기타리스트이다.


1994년, 하이럼 블록은 한창 마약에 빠져 있었다. 마약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는데, 그는 마약을 구하기 위해서 애지중지하던, 하나뿐인 62년 산 오리지널 펜더 기타를 팔아버리고 만다. 때마침 뉴욕 맨해튼에 음반 녹음을 위해 방문해 있던 김종진이 이 기타를 구매했다. 당시 600만 원을 주고 구매했다는데, 2023년 현재에는 그 가치가 1억 이상이라는 말이 있다.


이 기타는 [The Bastard]라고 불렸고, 하이럼 블록이 사용했던 가장 유명한 기타로도 유명하다. 기타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로서는 기타 구성과 개조된 방법, 연식 등에 대한 설명을 읽어봐도 도대체 어떤 점이 훌륭한 것인지 알 길이 없으나, 기타 전문가들에게는 꿈의 기타처럼 알려져 있다.

그렇게 얻은 이 기타로 바로 [봄여름가을겨울] 4집 앨범을 녹음했다고 전해진다.

금전적인 가격도 가격이지만, 이제 전설이 된 기타리스트의 단짝이었다는 점이 더 가치를 올리는 것 같다.


하이럼 블록이 살아있을 때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기타를 매개로 양아버지와 친아버지 식의 대담도 성사되고, 내한 공연 당시 김종진과 함께 무대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하이럼 블록이 죽을 때까지 김종진과의 인연도 이어졌다.


기타리스트에게 있어 기타는 어떤 존재일까?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알려진 비비 킹(Riley B. King, 1942~2014)의 기타 루실(Lucile)은 사람처럼 이름을 가진 기타다. 비비 킹이라는 이름은 그가 추구했던 음악인 블루스에 착안한 별명인 ‘Blues Boy’에서 첫 글자를 따와 자신의 이름과 합쳐 부르게 된 예명이다.


1949년, 비비 킹이 아칸소주 트위스트의 한 클럽에서 공연하던 중 ‘루실’이란 여성을 두고 클럽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싸우던 중에 기름에 불이 옮겨 붙어 화재가 발생했는데, 황급히 빠져나온 비비 킹은 자신이 기타를 두고 나온 것을 깨닫고 다시 불타고 있는 클럽에 들어가 기타를 들고 나왔다. 사건 경위를 파악한 비비 킹은 루실이라는 여자로 인해 사건이 시작된 것을 알고 이를 기억하기 위해 자신의 기타에 ‘루실’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이 이야기를 토대로 ‘루실’이라는 노래도 발표해 불렀다.

한영애가 부른 <루씰>은 비비 킹의 기타 루실에게 헌사하는 곡으로, 한영애의 노래 덕분에 나도 루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기타 연주자에게 기타는 목숨 걸고 구해내야 할 애인과 같은 존재다. 그런 소중한 존재를 마약에 절어 헐값에 팔아버리다니! 그런 면에서 하이럼 블록은 비록 천재적인 기타리스트이긴 했지만 비비 킹이 보여준 기타에 대한 애착을 지켜내지는 못했다.


혹시 관심 있는 분들은 인터넷에 하이럼 블록의 기타를 검색해 보면 김종진과 기타 전문가 사이에 대담을 나누는 동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완전히 다른 이야기지만 최초의 인류로 알려진 원시인의 이름이 ‘루시(Lucy)’다. 318만 년 전에 존재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종이라고 한다. 1974년 11월 24일, 에티오피아에서 뼈 조각의 형태로 발견된 화석에 붙인 이름이다. 이 화석이 ‘루시’라는 이름을 갖게 된 데도 음악과 관련이 있다.


당시 발굴 현장에서 사람들이 영국 비틀스(The Beatles)의 유행곡인 <다이아몬드와 함께 있는 하늘의 루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즐겨 불러 화석의 이름을 루시로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연구 결과 화석 주인의 성별이 여성일 확률이 높다고 발표되면서 이름과 연계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루시’를 발견한 고인류학 박사의 이름이 ‘도날드 요한슨’인데, 2014년에 뤽 베송 감독이 연출한 영화 <루시>에서 주인공 루시 역을 연기한 배우의 이름은 ‘스칼렛 요한슨’이다.


이 영화는 최초의 인류로 알려진 루시를 인간 한계를 뛰어넘어 새롭게 재탄생한 신인류로 표현하면서 같은 이름을 상징적으로 사용했다. 악당 역할로 우리나라 배우 ‘최민식’이 출연하기도 했다.


하이럼 블록의 기타에서 비비 킹의 ‘루씰’을 떠올렸고, 매력적인 이름인 ‘루씰’을 생각하다 보니, 비슷한 발음을 가진 최초의 인류 ‘루시’가 떠올랐다. 거기에 루시라는 이름이 지어진 데는 비틀스의 노래가 있었고, 루시라는 이름은 다시 많은 영화에서 쓰였다는 게 연쇄적으로 생각났다. 그중에서도 여주인공과 루시를 발견한 박사의 성이 같다니! 재미있어 적어봤다.


(#14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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