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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Apr 28. 2023

길복순(2023) #8

심각한 무책임에 딴지 좀 겁니다!

☞ 본의가 아니게 스포일러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차이를 느끼는 건 쉽다. 호불호와 취향에 대한 존중이 중요한 시대이기도 하다. 또한 각 개인의 이기적 생각과 자율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질서 유지와 통합, 합리와 공정, 존중과 이해, 조화와 평등에 미래를 위한 준비까지. 한꺼번에 다 꿈꾼다. 가능할까?


마치 영화와 상관없는 듯한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는 이유가 뭐냐고 묻겠지만, 아니다. 영화 <길복순>은 사실 액션영화라기보다는 이런 정체성과 차별, 동성애, 학폭을 포함한 폭력, 불공정, 가정 폭력을 포함한 가족 문제, 직업의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 등 너무 많은 내용을 뭉뚱그려놓은 작품이다.


심지어 딸 재영의 학교에서 토론했던 주제도 실제 우리 사회에서 화제가 되었던 내용인 “10만 원권 지폐의 인물로 누가 가장 적합할까?”였다. 문제는 이 토론 주제가 아니라 이어지는 복순과 재영의 대화 내용이다.


©NETFLIX


재영은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김구, 안중근’이 거론되었는데, 그들의 공통점을 ‘남자’가 아닌 ‘사람을 죽인 사람들’이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논개’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여자가 하기 힘든 일이잖아’라고 덧붙이면서.


재영의 구별대로 말하자면, 논개는 자신의 생명을 버려가면서까지 사람을 죽였다. 모순적이다. 공통점을 말할 때는 남녀 구별이 아니었는데, 재영은 왜 갑자기 ‘여자’를 이유로 들먹였을까?


남성과 여성의 구별에 앞서 재영의 취향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적 복선이었다 해도 이 대사는 엄청난 무리가 있어 보인다.

복순은 그저 ‘재미있는 관점이네’ 하며 가볍게 넘기지만, 이 짧은 대화 장면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첫 번째는 앞서 말한 대로 재영의 성적 취향을 은연중에 표현하는 영화적 복선의 역할이다. 그러나 이 대사는 엉뚱한 데 초점이 맞춰진다.

감독이나 작가의 역사적 사관을 의심해야 할지, 아니면 요즘 중학생들의 심각한 역사관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의도적인 오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광개토대왕이나 을지문덕 장군은 자국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혹은 확장하기 위해 전쟁에서 적을 죽인 것이다. 이것도 살인이라고 하면 살인이긴 하지만, 보통 그 역사의 자국민은 업적이라고 얘기한다.


특히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 의사를 단순히 ‘사람을 죽인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건 정말 납득하기 어려웠다.

넷플릭스라는 매체는 전 세계인이 시청하는 미디어 중 하나인데, 마치 무언의 동의처럼 들리는 복순의 가벼움에 확실하게 딴지를 걸고 넘어가야겠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탈하여 저지른 만행과 두 위인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선택한 행동인지는 다 생략하고,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 의사의 행위 자체만 ‘살인’으로 거론하고 끝내버리면, 외국의 시청자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것이다. 글로벌 시대의 문화 시장에 내놓을 작품을 제작하는 감독으로서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갑자기 ‘노재승’이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그 이름이 떠오른 이유와 분노가 치미는 이유는 아래 기사를 참고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노재승 또... "김구는 국밥 좀 늦게 나왔다고 사람 죽인 인간"
지난 광복절에 SNS 댓댓글로 비하 발언... 민주당 "윤석열 입장 밝혀야"
(오마이뉴스, 21.12.08 12:15 l 최종 업데이트 21.12.08 13:15 l 이경태(sneercool))


다른 하나는 앞에서 이어지는 것처럼 엄마와 딸 사이에 ‘살인’에 대한 거론이 너무 가볍게 다뤄진다는 점이다. 이 또한 ‘킬러’라는 직업을 숨기고 있는 복순이 딸에게 들킬 수도 있다는 심리적인 긴장감을 위한 장치로 쓰인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이 짧은 대사들은 결국 남녀 차이를 말한 것도 아니면서, 살인에 대한 개념을 말한 것도 아니다. 그저 모순적이고 이상한 대화이면서, 외국인 시청자나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졸지에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 의사가 단순한 ‘살인자’였다는 오해만 남기는 셈이다.


영화는 모든 장면마다 대사 한마디는 물론이고, 미세한 부분까지 주제를 향한 의도와 복선, 미장센이 가득하다고 하던데, 그런 의미에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다.


(#9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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