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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May 02. 2023

길복순(2023) #9

엄마 전문가, 아빠 전문가

☞ 본의가 아니게 스포일러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이쯤에서 다시 질문해본다. ‘한 사람의 여자로서, 한 사람의 엄마로서 완전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또는 ‘여자’를 ‘남자로’, ‘엄마’를 ‘아빠’로 바꾸어 물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인문학을 통달한 사람이라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배우 전도연은 영화배우이므로 당연히 이런 질문보다는 배우로서 받는 질문에 답변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질문을 다시 꺼낸 이유는 영화 <길복순>에서 복순과 재영의 생활이나 삶을 억지로 ‘완전’하게 보이도록 미화하고 있는 가식을 말하기 위함이다.


영화 <길복순>의 복순은 전문성을 인정받는 엘리트지만, 그녀가 여성이기 때문에 특별한 것은 아니다. 킬러는 사람만 잘 죽이면 된다. 또한 길복순은 스스로 느끼듯이 엄마로서의 정체성은 유약하다. 그것은 복순이 킬러이기 때문은 아니다. 많은 부모가 자식과의 교류가 편하지 않은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복순에게서 정당하지 못한 ‘킬러’라는 전문성을 제거한다면, 모녀가 누리고 있는 부유함도 사라질 것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킬러’라는 직업은 그녀에게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주고 있다.

일반적인 직업이란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당한 직업을 말한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정당한 직업은 벌이가 그리 크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경쟁과 도구화된 인력은 을끼리 밥그릇 싸움을 하도록 유도되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얼마든지 인력을 교체할 수 있고, 게다가 비용(임금)도 낮게 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현실이 불편하고 힘들다.


특히 편모나 편부 가정의 경우나 청소년 가장 등은 정당하지 않아도 벌이가 큰 일반적이지 않은 직업의 유혹에 상대적으로 빠지기가 더 쉽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 사회에 사기꾼이 넘쳐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킬러’와 ‘학부모’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영화에 반영한 부분이 현시대를 비추는 ‘시대정신’의 반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새로운 반어법인지, 독창적인 어깃장인지 알 수는 없으나, 동의가 어려운 얘기다.

‘전문 킬러’에서 ‘킬러’를 빼고 ‘전문’만 남기려면 무엇인가 다른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데, ‘학부모’와 결합해서 캐릭터를 현실화한다고 해도 길복순과 재영의 가족관이 어떤 의미에서 ‘시대정신’이 된다는 말인가?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여성, 경제적 가장, 조직을 이루는 핵심 구성원, 엄마, 학부모, 주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한 개인. 온통 상충하고 충돌하는 지점이 엿보인다.


아무튼 길복순이 킬러로서 전문가가 아니라면, 결국 남편 없이 홀로 반항심 충만한 청소년 딸아이를 키우는 중년 여성이 남는다.


전문 킬러라는 닉네임을 떼어낸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지며, 늘 타인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때로는 우월감과 열등감을 느낄 것이다.

한 개인으로서 여성과 엄마, 학부모, 직장인으로 살면서 자기 삶에 주체적인 존재이기도 힘든 상황에서, 사회적 남녀불평등에 대한 인식과 평등과 여성으로서의 자유 실현을 위한 구호가 그녀에게는 어떤 의미가 다가설 수 있을까?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사는 일반인이란 이처럼 약한 사람이 되고 만다. ‘아빠 전문가’나 ‘엄마 전문가’는 사회에서 전문가로 봐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지속할 수 있는 바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바로 부모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이 스스로 전문가임을 모를 뿐.


(#10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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