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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May 03. 2023

길복순(2023) #10

배우 ‘전도연’

☞ 본의가 아니게 스포일러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배우 전도연은 1973년 2월생으로 2023년 현재 딱 50세다. 배우로 활동한 지 30년이 넘은 베테랑 배우다.

전도연도 배우라는 전문성을 빼면 한 사람의 여성이자, 아내이면서, 엄마가 남는다.

그녀가 극장용 영화가 아닌 OTT 작품에 설경구와 함께 출연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영화 세계의 직종도 세계화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현실적 절박함이 느껴진다.

영화 <길복순>에서 복순의 딸 이름이 길재영인데, 우연인지 설정인지 몰라도 전도연의 실제 딸과 이름이 같다.

이런저런 면에서 영화 <길복순>은 ‘배우’를 ‘킬러’로 치환한 작품이 명확하다.


유명 배우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려봤고, 이제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배우들에 밀려 주연 자리를 꿰차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여배우. 그런데도 전설적인 배우로서의 전문성과 인맥, 다양해지는 미디어를 넘나들며 존재감을 나타내야 한다.

배우 전도연의 이런 심정은 [씨네21] 인터뷰에도 잘 나타난다.


[인터뷰] ‘길복순’ 전도연, 나는 여전히 목마르다.

(참고 : 김소미, 씨네21 2023년 4월 1401호, pp.24-27)


이 인터뷰에서 전도연은 복순에게 에둘러 고백하는 민규와 선을 긋는 이유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야 할 두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극 중의 복순은 차민규와 크게 다른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차민규는 혼자서 러시아 마피아를 도살하다시피 하는 킬러지만, 복순을 마음에 두고 있는 인간적인 면이 있다. ‘철길 떡볶이’ 집은 아마도 두 사람에게 특별한 장소인 듯하다.

재계약을 화두로 꺼내어 압박하는 차민규와 애써 회피하려는 길복순. 두 사람이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음을 나타내는 장면이면서 동시에 비슷한 부류임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재영이 사고를 저질렀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나서는 복순의 뒤통수에 차민규가 “엄마 닮아서 소질 있나 보네”라고 말하자 복순은 “세상에서 제일 무딘 칼이 선배 입에 꽂혀있을 거야”라고 응수한다.

날카로운 칼보다 무딘 칼이 훨씬 고통스럽다는 의미에서 ‘무딘 칼’은 단순한 직업적인 살인이 아니라 감정이 실린 가해를 뜻한다.

즉 직업적으로 수많은 마피아를 살해하는 차민규의 살인 동기와 자기 딸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길복순의 살인 동기는 어떤 면에서 다를까?


길복순이 차민규의 말에 분노할수록, 어떻게 보면 자신과 스승이나 다름없는 차민규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동시에 길복순은 재영을 고리 삼아 차민규와는 다른 세상에 자신이 있다고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과 말 자체에서 스스로 그것을 부정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또한 전도연은 배우로서 감정을 감추면서 동시에 표현하여 보여줘야 하는 연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클라이맥스의 찰나에 빠르게 느껴지는 감정들은 너무 다양하고 모순적이면서 상반되기도 하여, 이런 순간은 보통 대사보다 말 그대로 연기력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경험이 많은 배우와 그렇지 않은 배우의 차이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전도연은 연기에 대한 이해가 훌륭했다.


‘여배우로서 특정 장르에서 소화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선입견’에 관해서도 언급하는데, 이에 관한 내용은 이 인터뷰의 제목으로도 갈음될 수 있을 것 같다.


배우가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어 하는 욕심은 매우 당연하다.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성별과 나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옳지 않다. 오히려 배우는 기존에 했던 작품에서 강렬하게 남은 이미지의 틀에 갇혀 다른 장르, 다른 인물을 연기하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

물론 할머니 배우가 연기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20대 숙녀를 연기하거나 공주 이미지의 여성이 갑자기 터프한 여전사 역할을 맡는 것은 영화가 망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외국의 경우, 1946년생의 ‘실베스터 스탤론’이나 1930년생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배우는 여전히 건재하다. 여배우의 경우도 1949년생의 메릴 스트립이나 1956년생의 린타 해밀턴, 1945년생의 헬렌 미렌을 비롯해 샌드라 블록, 나오미 와츠, 다이앤 레인, 줄리아 로버츠, 니콜 키드맨, 틸다 스윈턴, 아네트 베닝 등 헤아리기 힘든 중년 배우들이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다.


전도연이 인터뷰 마지막에 언급한 대로 “현장에서 일할 때, 나는 가장 나답고 살아 있다고 느낀다.”라는 말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 남들이 인정하는 전문성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성취감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한 사람의 여자로서, 한 사람의 엄마로서 완전하다는 것’.

즉 사람으로서 완전하다는 것은, 우습지만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완전함’은 인간의 범위를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거기에서 얻은 성취에 스스로 만족하고 기뻐할 줄 아는 불완전한 인간이야말로 완전한 인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11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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