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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May 09. 2023

길복순(2023) #12

항상 사람이 문제다

☞ 본의가 아니게 스포일러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사회가 폭력에 둔감해지면 아이들의 세계도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학교폭력이 점점 사회문제가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것을 어른들의 사회적 감성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는 더 커진다. 게다가 똥 묻은 어른들이 겨 묻은 아이들을 계도한다는 게 아이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 생각해보면 결과는 자명하다. 세대 간 저항은 더 커질 것이 뻔하다.


아무튼 영화 <길복순>에서, 복순의 딸 재영은 학우 유철우의 목을 가위로 찌른다.

모든 사냥하는 동물이 사냥감을 단번에 제압하기 위해 노리는 부위가 바로 목이다. 그만큼 노출된 부위 중에 가장 약한 부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을 노렸다는 것은 살해 의도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의 경우에는 동물과 다르다. 살해 의도가 사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훨씬 복잡하다.


교장 선생의 말처럼, 가해자 재영과 피해자 철우 그리고 목격자인 소라까지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장실에 모여 목소리를 높이는 학부모 3인은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모였지만, 사건의 원인과 이유, 아이들의 심리 등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른들의 사회적 논리에서 조금도 벗어남이 없다. 남의 자식은 괴물이고 무조건 경멸의 대상이 되고, 내 자식은 무작정 보호해야 할 대상 이외의 무엇도 없다. 그러니 자본주의 사회답게 경제적 우월성이나 학교 조직에서의 직위를 내세워 자기 하고 싶은 말만 지껄이는 것이 전부다.


재영이 철우를 찌르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철우가 재영을 협박하는)은 완벽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의 원인은 동성애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차별로부터 시작한다. 재영은 소라를 좋아한다. 마음으로 좋아하는 걸 넘어 애정 행위를 수반한다.


이것을 재영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면 너무 순수하고 소중한 감정이다. 만일 동성이 아니라 이성 간이었다면, 사람들은 청춘들 간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감정 교류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재영에게는 그것이 현실이었고, 주위 사람들에게는 금기된 기행이라는 인식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철우는 어른들이 사회에서 그러하듯이, 자기 과시를 위해 재영의 감정을 이용하려고 욕심을 부렸고, 재영의 약점이라고 생각되는 점을 파고들었다. 마치 복순이 후배들에게 외쳤던 상대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 지점을 공략하라는 말을 실행하는 것처럼.


철우가 손에 든 재영의 약점은 재영에게만이 아니라 소라에게 더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소라가 나타나 달려든다. 소라는 재영과의 감정보다 자신의 두려움을 선택함으로써 재영을 배신한다. 재영이 철우를 공격하게 된 핵심은 아마도 철우의 위협과 복합된 소라의 행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재영은 철우보다 소라에게 크게 상처 입은 것이다. 순수함은 순수한 만큼 아픈 법이다.


용기 내어 엄마에게 얘기하는 재영의 말에 복순 역시 사건 자체보다 딸의 동성애적 취향에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관람객에게 복순의 혼란을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이 장면부터 마치 롤러코스터가 내리막에 접어든 것처럼 전개된다.

복순은 차민규의 동생이자 MK ENT의 이사인 차민희의 계략에 빠져 일생 최고의 위기로 치닫는다.

‘주인공은 시련을 통해 성장한다’는 작가들의 잔인한 공식에 의해 복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결국 영화는 결말의 순간에 차민규와 길복순의 대결로 이어지고, 그 장면들 사이에도 깨알처럼 인물들의 심리적 개연성을 잘 버무렸다.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으로 우리 사회에서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나는 이 말씀을 오마주 하여 “사람이 문제다”라고 바꿔 인용하고자 한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그 의미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똑같은 시간적·공간적 경우의 수보다 사람이 갖는 인식과 판단, 선택과 결단, 행위와 책임, 생각과 마음가짐 등이 다를 수 있음을 강조하고자 하는 말이다. 즉 사건이나 서사의 원인 자체보다 항상 사람, 특히 그 본성이 문제임을 말한다.


영화 <길복순>은 넷플릭스에서 개봉된 작품답게, 상업적인 설정이 많다. 그럼에도 구석구석 뜯어보니 얘깃거리가 제법 많아 글이 길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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