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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May 24. 2023

공포의 실체? 그건 바로...

아치형 홀에 파묻힌 무언가 - 러브, 데스 + 로봇 시즌3(2022)

√ 스포일러 보통입니다만 걱정되시는 분은 읽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제목 : 러브, 데스+로봇 시즌3 중에서
   아치형 홀에 파묻힌 무언가(In Vaulted Halls Entombed)

크리에이터 : 팀 밀러, 데이비드 핀처
제공 :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
년도 : 2022년, 총 9화 완결
장르 : SF, 스릴러, 호러
등급 : 성인용




간단 줄거리

6명의 미군 특수부대 델타포스 대원들이 인질을 구하기 위해 적이 숨어든 동굴로 잠입한다. 그들은 동굴에서 괴생명체의 공격을 받아 하나둘 죽어간다.

겨우 살아남은 리더 하사와 대원 하퍼. 두 사람은 달아난 동굴 내부에서 거대한 미지의 존재를 맞닥뜨리는데…




실사판 영화를 보는 듯한 실제 같은 그래픽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훌륭한 그래픽 덕분에 동굴 내부에서 느끼는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또 여전히 잔인한 묘사가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긴장감 넘치는 액션 장면 등 영상 비주얼은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든다.


인간은 상식 밖의 존재, 알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에 대해 보통 세 가지 태도를 보인다. 그중 첫 번째는 두려움이고, 두 번째는 무모함이다.


인간은 자기 상식에서 벗어난 상황이나 존재는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공포 앞에서 하나뿐인 ‘생명’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모르는 존재에 대해 두려워하는 인간 역시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반인 것이다. 두려움 또한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며, 자기 스스로 보호하도록 행동하게 만드는 보호기제라는 말이다.

무모한 경우는 인간 상식, 정확하게는 일반적인 현대인의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가 어렵다. 그는 엄청나게 용감한 사람일까?


대원 중 한 명은 동굴에 진입하기도 전에 두려워한다. 보통 감정이 예민하거나 곱게 자랐거나 어려서부터 쉽게 무서움을 잘 타는 스타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보통 이런 종류의 호러 장르에서 항상 가장 먼저 죽는다. 그것은 그가 느낀 두려움의 결과를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어느 정도 예측하던 관객에게 뻔한 결과지만 실질적 두려움에 대한 공명을 전하기 위한 맛보기 역할이다.

무엇인지 모를 공포에 휩싸여 정신 줄을 놓는 순간이 끝이라는 것, 무턱대고 스스로 공포에 던져 넣는 어리석은 자의 최후를 보여주는 것으로 일반적인 상식선의 두려움에 대한 의문도 던지는 것이다.


반대로 무모한 사람도 있다. 본 에피소드 <아치형 홀에 파묻힌 무언가>에서는 소대 리더인 하사가 그런 캐릭터이다. 그는 전형적인 군인이며, 팀의 리더로서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을 자신의 자존심이자 신념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그가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에 비해서 미지에 대해 조금도 더 아는 바가 없다는 점이다. 용기라면 용기이고 만용이라면 만용인 정신 무장으로 앞으로 나가야 하고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생명을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어찌 보면 최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캐릭터는 보통 극의 비중에 따라 아예 초반에 죽거나 아니면 최후까지 남아 또 다른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주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극 중의 ‘하퍼’와 같은 사람이 있다. 그녀는 대외적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스스로 두려움을 인정한다. 그러나 리더처럼 그것을 무시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리고 위험이 닥친 순간에도 다른 동료들처럼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통합하여 차분하게 생각하고 분석한다. 그 근본에는 자존심이나 고정관념, 무모한 용맹 따위는 없다. 그녀는 자기 생명뿐 아니라 타인의 생명을 소중히 생각한다. 달아나는 적을 발견했어도 당장 적을 사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있음을 간파한다. 냉철한 현실 감각을 앞세워 이상하게 진행되고 있는 작전임에도 끝까지 절망하지 않는다.


ⒸNetflix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과 그에 대한 대응을 살펴본 이유는, 갑자기 나타난 정체 모를 괴생명체의 무지막지한 공격이 공포의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그 작은 괴생명체들의 잔인한 공격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은 절대적인 악(惡)을 봉인한 감옥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존재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일종의 보안장치였다는 말이다.


이것은 잔인하게 묘사된 괴생명체의 공격은 공포 축에도 못 끼는 공포 자체가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달리 표현할 이름이 없으니, 그냥 ‘악마’라고 부르기로 하자.


실사에 가까운 비주얼을 선보이던 애니메이션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절대적 힘을 가진 악마의 출현은, 시청 순간의 긴장감은 올릴지 모르나, 그 비현실성으로 인해 메시지의 방향은 하늘 높이 날려버리고 말았다.


미지, 어둠, 보이지 않는 것, 모르는 무엇, 감춰진 것. 이것들은 모두 분명히 존재는 느끼지만 아무런 무엇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음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그처럼 존재 자체도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우리가 살아가는 내내 많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심지어 기억(과거)이나 예상(미래) 또는 추측이나 상상 그리고 현실의 생각 안에도 있다.


더 끔찍한 사실을 말한다면, 그 실체는 절대로 보거나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인간의 어떤 능력으로도 ‘봉인’ 따위는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라 칭송하는 이성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과학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인간이 인간으로 남아있는 이상에는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인간’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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