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지막 네오 May 28. 2023

1492년,
고집 센 바보 하나가 있었으니!

히바로 1/3 - 러브, 데스 + 로봇 시즌3(2022)

√ 스포일러 보통입니다만 걱정되시는 분은 읽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제목 : 러브, 데스+로봇 시즌3 중에서
   히바로(Jibaro)

크리에이터 : 팀 밀러, 데이비드 핀처
제공 :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
년도 : 2022년, 총 9화 완결
장르 : SF, 스릴러, 호러
등급 : 성인용


드디어 길고 긴 여정 끝에 <러브, 데스+로봇> 시즌3의 마지막 에피소드에 다다랐다.


마지막 에피소드 <히바로>의 제목 ‘Jibaro’는 스페인어다. 우리말로 하면 ‘촌놈’이나 ‘야만인’ 또는 ‘원시인’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시골에 사는 농부나 원주민 또는 토착민을 야만적이고 무식한 짐승처럼 비하하는 말이다.

제목과 등장하는 인물들의 차림새를 통해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중세 스페인과 관련되어 있음을 예상해 볼 수 있다.


먼저 <히바로>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숲속에 중세 기사들 무리가 나타난다. 그들은 화려한 치장과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두꺼운 강철 갑옷을 입었다. 무리에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병사(이하 기사)가 있었다.

거대한 호숫가에 도착한 무리는 어떤 의식을 거행한다. 그 사이에 기사는 호숫가에서 반짝이는 황금 조각을 발견한다. 그의 눈빛이 탐욕으로 빛나자 호수 바닥에서 세이렌이 나타난다.

온몸을 화려한 보물로 치장한 그녀가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기 시작하자 무리의 모두가 그녀와 같은 동작으로 춤을 추며 호수로 달려 들어가 전멸하고 만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기사는 혼자 살아남았지만 두려움에 떤다. 세이렌은 자기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는 그를 다른 방법으로 유혹한다. 그러나 기사의 눈에는 오직 그녀가 두르고 있는 보물들만 보인다.

결국 기사는 세이렌을 제압해 그녀가 두르고 있던 모든 보물을 벗겨내고 그녀를 흐르는 강물에 던져 버린다. 강은 세이렌의 피로 물들고 들끓는다. 자, 이제 그녀의 복수가 시작된다.




애니메이션 <히바로>는 현실보다도 더 현실 같은 그래픽과 아름다운 색채의 향연이다. 첨단 컴퓨터그래픽과 애니메이션 특유의 판타지적 특성이 결합해 새롭게 창조해낸 영상미는, 그저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르기보다 연속해서 이어보는 중세 명화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지극히 현실적인 영상은 자연의 소리와 세이렌의 절규 이외 모든 인간적 소음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연출된 음향과 더해져 특별하고 기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여 몰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반면에 현란한 색채만큼이나 세이렌의 절규와 동작은 강렬하다. 기사 무리를 공격하는 것은 분명 세이렌인데 왠지 그녀의 모습과 눈매에서 슬픔이 느껴진다.


ⒸNetflix


사실 <히바로>는 단순히 상상의 생명체 세이렌을 주인공으로 앞세운 중세 시대 배경의 판타지물이 아니다. 이 짧은 이야기의 영상에서 이런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 감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유는 이 이야기 내면에 숨겨진 무엇과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있는 어떤 감정이 서로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혹시 이런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다.

먹구름 가득한 하늘에서 비가 엄청나게 내리던 어느 저녁, 담배를 사러 우산을 들고 나섰다. 동네 슈퍼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슈퍼 앞에 놓인 평상에 올라앉아 비를 맞고 있는 강아지가 보였다. 녀석은 누굴 기다리는지 비에 젖어 초췌한 데도 꼼짝하지 않고 길 끝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슈퍼에서 담배를 사서 한참을 걸어 돌아왔다. 그러다가 문득, 몸을 돌려 다시 그곳을 바라보았다.

휘몰아치는 빗방울, 멀리 요란한 자동차 경적들, 오가는 사람 없는 작은 길목의 희멀건 가로등 불빛. 마치 거기에 오래전부터 있던 일부처럼 작은 그림자는 떨고 있었다.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고 아무 생각 없이 돌아서 걷는데, 별안간 눈물이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눈물의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결이 어려운 이야기였다면 무시해도 상관없을 듯하다.


아무튼 그 무의식의 연고를 찾기 위해 우리는 과거로 떠나야 한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라는 인물이 있었다.

태어나기는 현재의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태어났지만, 활동은 주로 스페인에서 한 인물이다. 1492년 10월,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아직 조선시대 성종이 다스리던 그 시절에, 콜럼버스는 배를 타고 스페인에서 출발해 두 달여 만에 지금의 바하마 제도에 상륙한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이라는 명언이 있듯, 그는 자기의 엉터리 계산 때문에 정확한 역사적 기록을 찾아 고생해야 하는 후대 사람들의 심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무작정 우기고 보았다.

그는 자기가 도착한 그곳이 인도라고 생각했고, 죽을 때까지 인도라고 믿었다고 한다.

웃기는 결과지만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이 인도인이라고 생각한 콜럼버스가 그들을 ‘인디오’라고 칭하는 바람에 아메리카 원주민을 지금도 ‘인디언’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1498년 5월에 바스쿠 다 가마가 진짜 인도를 발견하자 유럽인들은 콜럼버스가 도착한 곳이 인도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했고, 결국 1503년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직접 아메리카를 방문함으로써 그곳이 인도가 아니라 새로운 대륙이었음을 알게 된다.

오늘날의 아메리카라는 이름도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공로를 인정하여 붙인 명칭이다.


(#2로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포의 실체? 그건 바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