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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May 29. 2023

콩키스타도르의 대학살 시대

히바로 2/3 - 러브, 데스 + 로봇 시즌3(2022)

√ 스포일러 보통입니다만 걱정되시는 분은 읽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제목 : 러브, 데스+로봇 시즌3 중에서
   히바로(Jibaro)

크리에이터 : 팀 밀러, 데이비드 핀처
제공 :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
년도 : 2022년, 총 9화 완결
장르 : SF, 스릴러, 호러
등급 : 성인용


이 어리석은 고집쟁이 콜럼버스는 고집만 강한 게 아니었다. 2차 원정 당시부터 그의 본성을 드러냈는데, 콜럼버스가 도착한 당시 30만 명의 원주민 수가 얼마 지나지 않아 500명도 채 남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콜럼버스의 원정대는 원주민들을 대량 학살하였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무차별 학살하였고, 살아남은 원주민은 노예로 팔거나 14세 이상 원주민은 노역을 부렸으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손을 잘라내는 형벌을 시행하여 과다출혈로 죽게 만들기도 했고, 9세 이상 35세 이하의 여성은 매춘부로 만들기도 했다.


콜럼버스가 위대한 탐험가로 명성을 얻게 된 데는 미국의 역할이 크다. 국가의 정당성을 역사적 증명에서 찾기 위해 역사를 미화한 전형적인 미국식 영웅화의 결과다. 당시 침략자들은 원주민과 흑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기에 콜럼버스의 만행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콜럼버스가 ‘황금의 땅’을 발견했다는 소문을 들은 당시 스페인 왕정과 용병들은 이후 스페인어로 ‘정복자’를 뜻하는 ‘콩키스타도르(Conquistador)’로서 계속해서 ‘가짜 인도’인 아메리카를 향한다.

‘콩키스타도르’는 보통 ‘정복자’로 풀이되지만, 정확하게는 15~17세기에 오직 ‘황금’을 쟁취하기 위해 아메리카로 파견된 스페인 원정대를 뜻하는 말이다.


이 과정에서 스페인 용병들에 의해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 ‘마야 문명’ 등 중남미의 여러 원주민 부족 문명이 멸망당했다. 또한 약탈, 방화, 학살, 살인, 강간, 노예화 등 차마 인간이 인간에게 행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짓을 일삼았다. ‘히바로’는 당시 침략자들이 원주민을 비하해 부르는 말이었다.


본 작품 <히바로>는 바로 ‘콩키스타도르’ 시대의 아메리카를 은유한 작품이다. 정서적인 효과를 위해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을 가져와 섞었다. <히바로>에서 세이렌은 정복당한 아메리카 원주민을 의미하고 고요하고 평온했던 거대한 호수와 강은 아메리카의 원시 자연을 의미한다.


ⒸNetflix


세이렌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작가 본인이 이미 전설이 된 그리스의 문호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에서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 일행이 바다를 지날 때 세이렌이 나타나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한다. 노랫소리에 홀리면 위험한 줄도 모르고 바다로 뛰어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이렌에 관련된 이야기를 이미 전해 들은 오디세우스는 마녀 키르케의 조언에 따라 선원들의 귀는 밀랍으로 막고, 자기 자신은 배 기둥에 묶어 무사히 빠져나온다는 이야기다.


사실 호메로스의 작품에서는 세이렌의 형태나 성별이 자세히 묘사되어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이후의 모방작들에서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을 하였고, 깃털이나 비늘을 가졌으며, 하체는 새의 형상으로 묘사되면서 변형을 거친다. 인어공주도 이런 변형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설도 있다.


세이렌은 유혹에 실패하면 물에 빠져 죽는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 부분은 잘 이해되지 않는 게, 세이렌은 원래 물(바다)에서 사는 요정의 종류가 아니었던가? 뭐, 어차피 사람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니 상상 이상의 무엇인들 못 하겠나 싶기도 하다.


<히바로>의 세이렌은 외형이 상당히 동양적인 여성으로 그려졌다. 그녀가 걸치고 있던, 옷이나 다름없는 보석 장신구들은 마치 비늘처럼 그녀를 감싸고 있다. 기사의 손을 뿌리칠 때 기사의 장갑에 박힌 보석은 날카롭지만 분명 빛나는 황금이었다. 문제는 이 보석들이 옷처럼 입은 형태가 아니라 자체가 세이렌의 외피처럼 붙어 있다는 점이다. 그녀에게서 보석을 뜯어낸다는 건 인간의 피부를 찢어 뜯어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황금’에 눈이 뒤집힌 기사는 점차 경계를 풀고 다정한 움직임으로 다가서는 세이렌을 폭력으로 눌러 그녀의 피부나 다름없는 보석을 벗겨낸다.

이 행위는 칼로 물고기의 비늘을 긁어내거나 닭을 잡을 때 털을 모조리 뽑아내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 끔찍한 이미지가 교차할 것이다. 비참하게 축 늘어진 몸뚱이에서 철철 흘러나오는 피가 바닥을 흥건하게 채운다. 반면 비늘을 벗기고 있는 사람이나 털을 뽑아내고 있는 사람의 눈빛은 광기가 번들거리고 침을 삼키며 입맛을 다시고 있다.


이것이 바로 스페인 정복자들이 저질렀던 만행의 비유다.

판타지로 표현된 애니메이션임에도 그 잔인함에 치가 떨릴 테지만, 불과 약 5백 년 전에 현재의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에 비하면 많이 순화된 것이리라. 이런 기록을 맞이할 때마다 같은 인간으로서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염없이 괴로워진다.


(#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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