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분석으로 본 <낭만닥터 김사부> 8
오성재 기자의 등장과 그의 움직임은 풀어가기 까다로운 사건이라고 생각했지만, 드라마 연출은 이를 단박에 뒤집을 만한 장면으로 바로 이어서 처리하면서 시청자들의 근심을 덜어준다. 그 장면은 오명심과 남도일이 ‘오다가다’에서 김사부의 결백함에 대해 나누는 대화를 옆 테이블에 앉아 오성재 기자가 듣고 있는 장면이다.
‘진실의 순간’이 열리는 첫 시작점이라 하겠다. 그리고 좀 빠른 전개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탁월한 방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명 ‘엿듣기’ 기법의 진수였다.
<낭만닥터 김사부>에서는 드라마의 고전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드라마 전반에서 이 ‘엿듣기’ 기법을 정말 잘 활용하고 있다. 심지어 문을 닫고 내부에 앉아서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도 필요에 따라 문밖에 기대선 인물이 다 알아듣고 이해할 수준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든다. 강직한 인물들은 자기 입으로 자신을 변호하는 말을 잘하지 않는다는 점 말이다. 사실 현실에서는 그런 부분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엿듣기’ 기법은 고리타분한 기법이긴 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고, 시청자로 하여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예측하도록 유도하는 역할까지 하면서 흥미를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탁월한 선택이라 하겠다.
도윤완은 19시간이 지나도 신회장이 깨어나지 않자 반격을 시작한다. 현정을 도발하고, 오성재 기자가 확보한 <외상센터 설립 계획> 정보를 김사부에게 들이민다. 상황은 김사부가 <외상센터>를 지원받기 위해 위험한 상황임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신회장의 인공심장 교체 수술을 강행한 꼴이 된다. 도윤완은 신회장을 자기가 맡겠다고 나서지만, 김사부는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예견하고 신회장과 얘기를 끝내놓은 상태였다.
이 장면에서 나오는 내레이션은 꼭 기록해 두고 싶다.
“팩트가 난무하는 시대. 힘 있는 이들의 말은 곧 팩트가 되고, 그러지 못한 이들의 항변은 유언비어가 되는 세상.”
팩트(Fact)는 ‘사실’이라는 의미인데, 그 사실마저 조작되는 현실을 날카롭게 찌르는 말이다. 사실에 입각한 진실이 아닌 조작된 사실로 만들어지는 진실은 진실이 아니다. 힘의 논리에 의해 진실은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된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는 너무나 뻔하다. 그래서 실제 눈앞의 현실을 들여다볼수록 가슴이 갑갑해짐을 느낀다.
제18화의 제목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이다. 도윤완은 오성재 기자를 이용해 신회장이 뇌사에 빠졌다는 찌라시를 돌려 언론 플레이를 시작한다. 이로 인해 돌담병원은 업무가 마비될 지경으로 기자들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한편 17화에서 갑자기 외출을 나갔던 여운영 원장은 과거 김사부 이름으로 본원에서 자행된 대리 수술에 참여했던 노(老) 간호사를 찾아갔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던 그녀는 여원장이 왜 찾아왔는지 짐작하고는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여원장은 그냥 우동이나 한 그릇 먹으러 왔다고 말하며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조급해진 도윤완은 다시 돌담병원을 찾아 돌담병원이 곧 폐쇄될 것이라고 폭탄선언을 한다. 김사부는 곧장 신현정 이사를 찾아가 신회장이 깨어난 후에나 병원을 폐쇄하든지 하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작은 식당에서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여원장은 간호사였던 식당 주인에게 이런 말을 한다.
“참 이상하죠. 우리 모두가 도윤환이 틀렸다는 걸 아는데, 지금 그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다 아는데, 왜 여전히 그는 저 자리에서 저렇게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걸까요?”
도윤완이 휩쓸고 지나간 병원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김사부는 가까스로 각자의 자리를 지키라고 말하지만, 도윤완의 지시로 본원에서 신회장을 이송할 의료진이 도착한다. 모두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던 그 순간, 기적처럼 신회장이 깨어나면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된다. 그러나 도윤완은 쉬지 않고 또다시 바로 다음 작전을 시작한다.
신뢰로 똘똘 뭉친 조직을 와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조직 구성원 간에 서로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도윤완은 바로 그 목표물로 강동주를 선택한다.
18화에 와서야 닥터 부용주가 닥터 김사부가 된 사연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14년 전 김사부는 환자로 입원한 장현주(김혜준 연기)를 만난다. 장현주는 거산대 의대 본과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김사부는 처음에는 이것저것 질문하는 장현주를 크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열정에 점차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부용주를 찾던 그녀에게 어쩌다 보니 자기를 ‘김 아무개’라고 소개한 김사부는 장현주의 ‘사부님으로 모시겠습니다’라는 말에 의해서 그렇게 김 아무개에서 김사부가 된 것이다.
사랑하는 제자를 잃은 선생님의 눈물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다루는 학문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가르치는 입장과 배우는 입장에서 서로 신뢰하고 존중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삶 전체를 놓고 봐도 정말이지 큰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첫 글에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90)나 <굿 윌 헌팅>(1998)을 언급한 이유가 바로 <낭만닥터 김사부>에서도 그와 유사한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닥터 부용주가 장현주를 만나게 되고, 부용주라는 이름을 버리고 김사부가 되는 시점도 그렇고, 이후 강동주나 윤서정과 김사부의 관계 역시 스승과 제자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바른 가르침을 주는 선생님, 바른 가르침을 구하는 제자. 어떻게 보면 이 세상은 그들의 가슴에서 우러나는 작은 샘물에서 시작하여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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