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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Jul 24. 2023

박광현의 <풍경화 속의 거리>

일상으로의 회귀 - 음악편

감성 탓인가? 세차게 내리는 비가 아니라 안개처럼 세상에 뿌려지고 있는 비를 보고 있노라니, 삼 일째 계속해서 입가에 저절로 흥얼거리는 멜로디가 있다.


쓸쓸한 느낌에 대해 관조하는 듯한 멜로디는 커다란 쇼윈도에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유심히 보게 만든다. 또르르 흘러내리다가 합쳐지고, 합쳐진 물방울들은 언젠가는 결국 새카만 도로에 떨어져 내린다.


만나고 헤어지는 세상 모든 일들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이 저 우주에 비견되는 순간이다. 거대한 존재들에게는 너무나 하찮고 보잘것없는 순간들을 붙들고 울고, 웃고, 괴로워하고, 행복해하는 사람들. 그렇게 하늘로부터 시작된 인연들에서 지하로 사라지기까지의 삶이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진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이상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상하다. 소리일 뿐인데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음악이 이상하고, 멜로디와 빗방울을 보면서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들도 이상하다. 음악과 그림은 손으로는 결코 써낼 수 없는 숨겨진 언어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쉽게 생각하자. 거창하고 화려하다고 그 내용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꾸며주는 장신구를 걸친다고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거대한 존재는 거대한 존재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나는 나대로 살면 그뿐. 애초에 함께 올려놓고 진열장 상품 고르듯 할 수 없는 것을 두고 애처로워할 필요는 없다.


카페에 앉아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내다본 세상 풍경은 어둡거나 회색이고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하다. 도시의 거리는 지나는 사람 드문 고요함과 쓸쓸함이 흐르고, 허밍으로 따라 하는 멜로디는 세상을 두루 돌아 내 귓가로 돌아온다.


박광현 - <풍경화 속의 거리>

내가 걸어가는 이 거리의 풍경은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인데
기억 속에서 아른거릴 뿐
 생각이 나지를 않네.

어느 화가의 그 그림이 떠올라
내 가슴은 이상히 떨려오네.
갈색 하늘과 쓸쓸한 거리
외로이 서 있는 사람.

아무도 모르게 하나의 얘기를 만드네.
내가 그림 속을 걸어가는 것처럼
이렇게 걸으며 하나의 추억을 만드네.
내가 그림 속에 그려있는 것처럼


느릿한 재즈풍 곡인 <풍경화 속의 거리>는 작곡가이자 가수인 박광현이 작곡한 멜로디에 도윤경의 작사가 어우러진 명곡이다. 박광현의 1집 앨범 <한송이 저 들국화처럼>(1989)에 수록되어 있다. 일반 대중에겐 박광현의 원곡보다 이승철이 부른 곡으로 더 익숙한 곡이다.


박광현의 원곡과 이승철이 부른 곡을 비교해서 들어보면, 유사한 창법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느낌이 매우 다를 것이다. 물론 이승철도 자기의 색깔로 매우 잘 소화한 곡이긴 하지만, 박광현의 원곡은 담백한 맛이 있고, 이승철의 곡은 뭔가 치렁치렁 꾸며진 느낌이 있다. 아마도 이승철의 목소리 자체에서 묻어나는 더 짙은 호소력이 그렇게 작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것은 물론 매우 개인적인 나의 생각일 뿐이다.


1965년생인 박광현은 서울대학교 국악과와 작곡과를 나와 MBC 강변가요제를 통해 입상했으며, 당시 이승철이 소속되어 있던 ‘신촌뮤직’을 만나면서 가수로 데뷔해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박광현은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몇 안 되는 작곡가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만의 색깔이라는 것은 그가 작곡한 곡들의 제목을 조금 나열해 보면 금방 고개가 끄덕거려질 것이다. 마치 유재하의 다른 버전이랄까?


노을과 김건모가 함께 부른 <함께>, 이승철의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그대가 나에게>, <잠도 오지 않는 밤에>, 김건모의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신승훈의 <우연히> 등이 그것이다.


(참고 : 나무위키-박광현)


박광현은 이른 나이에 대성공을 이룬다는 게 반드시 행복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삶의 법칙을 몸소 겪은 비운의 뮤지션이기도 하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인간이 잘못된 선택을 통해 누구라도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길을 가도록 하는 오류의 길을 겪었다. 그래도 김현식이나 유재하, 또는 김광석처럼 아예 그의 새로운 음악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 것은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그들 모두는 우리의 짧은 대중음악사의 보석 같은 존재들이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도시, 밤에는 더운 열대야. 생명을 앗아가는 안타까움에 밉기도 한 성난 하늘, 무서운 폭우… 그러나 잔잔하게 흩뿌리듯 내리는 비는 마치 세상의 모든 잘못과 노여움을 잠재우려 토닥토닥 달래주는 어머니의 자장가처럼 느껴진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그리웠을까? 세차게 내리는 비가 아니라 안개처럼 세상에 뿌려지고 있는 비를 보며, 계속해서 입가에 저절로 흥얼거리는 멜로디는, 어느 화가의 그림 속, 갈색 하늘과 쓸쓸한 거리에 외로이 서 있는 사람을 살피며 아무도 모르게 나만의 얘기 속으로 침잠하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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