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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Sep 05. 2023

그해 우리는 #6/6

외로움 그리고 선택의 순간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은 읽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06. 외로움 그리고 선택의 순간


가난이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이야기라면, 이번에는 개인적으로 가질 수 있는 어둠을 얘기해 보고자 한다.


사람에게 있어 외로움이란 인구수와 큰 관련이 없는 듯하다. 사람이 많다고 외롭지 않거나 사람이 없다고 외롭거나 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오래전에는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현재보다 어려웠지만, 지금보다 외롭지 않았다. 지금은 주변에 무수하게 많은 사람이 북적여도 외로울 수 있다. 그것도 극심하게.


엔제이라는 캐릭터는 인기를 먹고사는 스타다. 극 중에는 싸가지없게 보일 정도로 하고 싶은 말을 툭툭 내뱉는 모습이다.

그녀는 10년 차 연예인이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나 업체에 제법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스타다. 게다가 속내를 잘 들여다보면 올바르고 선한 사람이다. 올바르고 선량한 성공한 사람은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고, 이해받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고립되어 외로워진다.


그런 그녀가 최웅의 전화를 기다리며 미친 듯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극 중에서는 ‘짝사랑’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고 있다. 짝사랑도 아무런 이유나 원인, 계기, 명목이 없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물건처럼 생겨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명백한 진리마저 ‘청춘’이라는 시기적 감성 안에서 ‘스타’가 아닌 한 사람의 ‘외로운 소녀’로 엔제이를 바라본다면 이해가 가능해진다.


마찬가지로 김지웅이 국연수를 짝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볼 수 있다. 국연수의 성격이나 행실을 봤을 때, 고등학교 입학식에서 본 그녀의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는 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그 감정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녀에 대해서 남들이 보지 못한 무엇인가를 봤어야 하고, 사연이라고 할만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지웅의 감정이 현실감이 있으려면, 국연수가 최웅과 헤어진 이후부터 현재 사이의 시간에 김지웅이 있어야 했다. 아니라면 현재의 감정은 이해되기 어렵다.


이제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최웅과 김지웅의 눈앞에 다시 나타난 국연수를 두고 김지웅이 다시 최웅과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감정을 드러낸다는 건 결코 ‘사랑’이라는 단어로 포장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이성에 대한 감정이 무르익은 성인들의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또한 그들의 치열한 삶에 대한 쉼터 역할이 가정을 벗어나 있다는 이유에서 ‘외로움’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 더 심하게 느낄까? 아니면 대중 안에서 더 심하게 느낄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혼자 있을 때는 외로운 줄 잘 모른다. 오히려 혼자만의 동굴을 벗어나 세상에 나서서 사람들을 다양하게 접할 때 비로소 외로움을 느낀다. 즉 나 이외의 대상이 아예 없는 경우에는 외로움 자체를 생각해 내거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혼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아마도 외로움이 아니라 그리움일 것이다. 이처럼 빛과 어둠처럼 대립되는 느낌이지만, 사실은 거의 한 몸처럼 상대적이다. 그것은 사람의 다양성 안에서 ‘나’를 느끼는 순간이다.


최웅과 국연수뿐 아니라 엔제이와 김지웅, 이솔이와 구은호 등 모든 인물의 로맨스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인간적인 외로움’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불을 지피는 일이 바로 10년 전의 다큐멘터리 촬영에 대한 시퀀스 차원의 촬영이다.


최웅과 국연수가 고3 시절일 때 촬영을 맡았던 박동일 PD가 수제자로 키워낸 김지웅에게 이 촬영을 맡기는 상황부터가 흥미롭다. 드라마에서도 잠시 언급되지만, 박 PD는 청춘들이 거치고 있는 과정을 이미 다 거쳐 지난 듯하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김지웅은 여전히 국연수에 대한 로망이 있고 자주 마주치면서 가슴앓이도 점차 증폭된다. 또 비슷한 처지에서 김지웅을 지켜보는 정채란의 시선은 거울 앞에 다음 거울을 세워둔 격이다.

이러한 관계를 단순히 삼각관계나 사각관계 등으로 보며 연애 심리적 재미를 살피는 것도 드라마 시청이라는 측면에서는 이해할 수 있으나, 그러한 심리적인 변화의 바탕에서 인간 내면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다면 더욱 기쁠 것이다. 원인을 알아야 대처할 수 있으니까.


‘역주행’이라는 단어는 원래의 뜻과 달리 옛날 인기 있었던 방송이나 연예인이 다시 인기를 얻는다는 의미가 되었다. 유튜브에서 관심이 증폭되자 SBC에서 다시 기획한 ‘1등과 꼴찌의 10년 후 현재’는 처음 기획했던 10년 전처럼 의도치 못한 전개의 연속이다.


방송국에서야 시청률이라는 측면에서 상업성을 생각할 수 있다지만, 연예인도 아닌 일반인 입장에서 10년 후의 모습, 그것도 성인이 된 현재 생활상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때 그 아이들이 여전히 티격태격하면서도 잘 지내는지, 어떻게 변했는지,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1등은 성공해서 잘 사는지, 꼴찌의 한심했던 친구는 정말 한심한 낙오자가 되었는지 등이 궁금했을 것이다.


10년 전, 카메라가 꺼진 이후의 약 5년 사이의 이야기를 모르는 시청자들은 남녀의 이야기다 보니 로맨스에 대한 기대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누구도 현재를 예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런 궁금증과는 상관없이 드라마는 좀 더 현실적인 현재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즉, 촬영을 결심하게 되는 데는 미묘한 두 사람의 심리가 맞아떨어진다는 점 외에는 촬영은 드라마 진행에서 에피소드처럼 처리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그해 우리는>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풍부하다. 중심이 되는 최웅과 국연수의 사랑 이야기 외에도 박동일 PD가 김지웅을 이해하는 방식, 정채란이 김지웅을 바라보는 시선, 엔제이가 최웅에게 갖는 감정, 김지웅이 최웅과 국연수를 바라보는 방식, 구은호가 이솔이에게 느끼는 감정, 그리고 최웅의 부모와 최웅이 서로를 이해해 가는 방식, 김지웅이 엄마 강자경에게 느끼는 감정, 국연수의 할머니가 국연수에게 바라는 진심 등 생각해 볼 지점이 많은 드라마였다.


끝으로 ‘사람 사이에서 사랑이란 믿음과 이해가 완성되어야만 가능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그 처음은 일단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만남이 있어야 무엇이 되었든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호기심이라 해도 좋고 관심이라고 불러도 좋은 마음이다. 이것 또한 쇳덩이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면 저절로 생겨난다. 그러면 어떤 부분이 변화를 만들어 내는 걸까?


호감이나 비호감 단계는 의지와 상관없이 생겨난다. 청춘들은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기 위해 호감이 있는 상대에게 오히려 냉랭하거나 짓궂은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호감은 어떤 형태로든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마련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세계는 통일되지만, 통일은 바로 이질성에서 비롯된다.”라고 말했다. 세계의 흐름은 빛에서 어둠으로, 다시 어둠에서 빛으로 변화해 가는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 변화는 말 그대로 늘 새로운 것이라서 “절대로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고도 했다. 즉 빛과 어둠을 나누고 대립하는 관념으로 생각하는 이분법적인 시각을 벗어나 자아 안에서 차분하게 깨우쳐 가는 변화의 근본에는 파르메니데스가 말한 ‘영원’한 무엇이 분명하게 차지하고 있다. 그 영원불변한 진리가 변화와 유한함을 가진 인간을 존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이라는 것이 이렇게 물 흐르듯 수월하다면 왜 힘들어하고 괴로워들 할까?


그것은 아마도 예고 없이 맞닥뜨린 갈래 길에서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 때문일 것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어떤 선택이 좋은 선택이고 어떤 선택이 나쁜 선택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 게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후회되는 선택이 훗날 좋은 결과로 돌아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강조했듯이, 알 수 없는 선택의 순간에 필요한 것은 진정한 용기다. 진정한 용기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당당해야 한다.

예상되는 두려움에 미리 물러서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자신에게 진심으로 솔직한 순간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최웅과 국연수는 비록 어긋난 선택으로 인해 먼 길을 돌아왔지만 끝내 그 진리를 깨우쳐 간다. 드라마 <그해 우리는>은 바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선택의 순간에 선택의 바탕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선택의 순간! 정말 용기가 필요한 것은 내면의 자아다. 자신에게 솔직한 선택이면 된다. 그러면 후회도 없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데 누굴 믿고 이해할 수 있는가? 그래서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는 말은 진리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생각한 방향대로 흐르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면 그것이 좋은 선택이다. 따라서 완성을 기다리지 말고 자신에게 집중하고 그것을 따르라고 감히 말해주고 싶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품성에 대한 자신감이 평소에도 충만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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