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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Oct 29. 2023

내가 바라고 걱정하는 대한민국 #3/5

일상으로의 회귀

03.

문제는 이러한 사회 권력층과 국가 및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에 있어서, 우리가 과거에 떨쳐내지 못한 '친일 세력'이 남아 그 숨겨진 힘을 이용해 그토록 지긋지긋한 '반공놀이'를 계속 이어가고 있으며, 거기에 함몰된 사회 정체성은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북한만이 명확한 적일 수 있는 데 반해, 역사적으로 조선시대 이전부터 우리나라를 삼키려 들고, 결국 식민 통치를 감행했으며, 현재도 그 야욕을 꿈꾸고 있는 일본에 대해서는, 어째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미래를 함께할 동료라고 판단하는 것인가? 그 근거는 무엇이고, 도대체 누구 마음대로?


그들이 미래를 함께할 동료이기 위해서는, 지난날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저지른 잘못과 만행에 대한 진정한 사과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 사과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나 사회 권력층 내지는 '친일'하는 몇몇 지식인이라는 자들이 대신 받아들이거나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일반이 모두 동의하고 인정할 수 있을 때만이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어느 틈에 사회적으로 예민하고, 말해서는 안 되는 금지된 이야기처럼 치부되는데, 해괴한 변형을 방지하기 위해 약간의 문장을 덧붙여야 한다는 현실이 슬프지만 그래야겠다.


결코! 북한 공산주의가 옳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요즘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얘기하고자 한다. 정치적인 '중립'이란 올바르고 좋은 것이 아니라,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형태에 머무르는 것을 당연한 미덕처럼 현혹하는 거짓에 불과하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진보와 발전을 가로막는 수단이며, 불공정한 현실을 유지하려는 꼼수에 불과한 것이다.


북한 공산주의가 명백하게 현실에 자리를 지키고 있듯이, 우리도 명백하게 우뚝 서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국가와 민족을 강제로 점령하여 우리의 정신과 말, 문화, 역사를 송두리째 빼앗고, 조작하고, 부정한 일제 왜구 세력은 당연히 우선적인 적으로, 국가적인 경계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우리의 관념이나 감성마저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서 이리저리 조절되고 조종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확고한 주체성을 가지고 우리의 국가,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은 우리가 만들어야 하고, 우리가 계획하고, 우리가 변화시키고, 우리가 발전시켜 나아가야만 한다.


친일 잔재들은 영악하게도 한국전쟁이 끝난 후, 가장 먼저 우리 사회의 자본과 권력을 점령했다.


자본주의의 허점을 가만히 생각해 보라. ‘유전무죄 무전유죄’ 세상이다. 그들이 결코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유함은 곧 권력이 되고, 권력은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민주주의 사회 속 독재를 가능케 한다.


실제로 이미 한국 사회에서 부유한 자는 죄를 지어도 처벌이 어렵다. 권력자도 마찬가지다. 부와 권력이 있는 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이 저지른 부정도 사회적인 처벌이 어렵다. 이러한 부정의와 불공정이 당위가 된다면 누구나 권력을 탐하거나 내지는 그 권력 근처에서 아부하며 공생하려 들 것이고, 그렇지 않은 정상적이고 양심적인 사람들은 소외된 약자로 내몰릴 것이다.


경제적 차별의 말 중에 ‘대한민국 1%’라는 말이 있다. 그건 반드시 경제적 부유함을 경계 짓는 말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같은 방식을 세계에 비추어봐도 마찬가지다. 부강하고 잘 사는 나라, 선진국이면서 세계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나라들은 국가 질서를 어지럽히고, 거짓으로 온 세계를 기만하고, 인류를 저버리는 행위를 해도, 그들이 세계에 뿌려댄 재화와 자원으로 인해 잘못과 부당함을 당위로 둔갑시킨다.


부와 권력은 무조건 옳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정의이던가! 그들 옆에 서고, 이익을 챙기려는 세력들에 의해서 모든 불합리가 합리화되고, 모든 거짓은 정당화된다. 현재 우리 정부의 행태는 미국이나 일본의 곁에서 행동대장 역할을 하는 한이 있어도 빌붙어 떨어지는 떡고물이라도 바라는 애처로운 모습 외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그 미래는 마치 조지 오웰의 작품 <1984>에서의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한 작품이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1세기 현시점에서 그에 더욱 가깝다고 느껴지는 것은 거짓된 민주주의 내부 또는 왜곡된 자본주의에서 더욱 확연하게 보인다.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은 어느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불온한 세력에 의해 불가역적인 순응으로 변화해 가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의 불온한 세력을 '친일 세력'으로 규정한 것이고, 그런 변화는 우리 인류, 모든 자유로운 영혼들이 바라는 세상은 결단코 아닐 것이다.


(#4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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