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빡머리라고 모두가
알머리는 아니다

by 박준영

어릴 적부터 삭발 시위가 이해가지 않았다. 시위.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도로나 광장, 공원 등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기세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에 따르면 그렇다.


시위의 제1목적은 의외로 협상이 아니다. 의사 표현부터 권리 주장, 그리고 가시화와 명분 형성. 내 의지가 이 정도라는 걸 보여주며 상대방이 '저 정도 의지를 보여주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이걸 협상의 카드로 쓰지는 못하더라도 상대를 긴장하게 만들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의 관심을 받거나 지지 결집으로 이어지는 고무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것 참. 어릴 적부터 삭발 시위가 이해가지 않았다. 안다. 머리카락은 예로부터 개인의 자존심이나 신분, 아름다움, 개성 등을 상징해 왔다. 삭발은 이러한 일상적인 자아를 스스로 내려놓겠다는 뜻. 오직 목표를 위해 일상을 등지겠다는 스스로의 단절. 어디 이뿐일까, 유교 문화권에서는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하여 머리카락을 자리는 것을 불효나 치욕으로 여겼다. 그만큼의 비장한 각오가 공고해졌다를 보여주는 행동. 그래서 이해가지 않는다. 21세기 아닌가. 이 행위가 이해가지 않기 시작한 게 2000년대 후반즈음이니까 나만 하더라도 20년 넘게 품고 있는 생각이다.


알고리즘의 시대. 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존중하는 알고리즘의 시대. 맥락보다 단어에 집중하는 사람이 많아진 서글픈 시대라고 세기를 격하해도 주목하는 사람이 없다. 상대방이 들어주지 않으니 나의 간절함을 이렇게라도 보여주겠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지만 '나의 간절함'에 공감하지 못하는 시대다. 슬픔에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 감수성이 옅어져서가 아니라, 혓바늘이 따가울 정도로 삶이 매끄럽지 못하다. 절실하냐, 너만 그러냐.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럴까 싶겠지만, 구체적인 대안까지 궁금해하지도 못한다.


늙은 시위. 모질게 말해서 그렇고 따뜻하게 말하자니 굳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다못해 이 얼마나 권위주의적인 퍼포먼스인가. 수평적인 사회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럴 때면 상명하복식 투쟁 구조에서 투사적인 엄숙주의 카드를 가장 권위적으로 보여준다. 대표자의 삭발이라는 것으로. 다음이 없는 시위. 협상이나 문제 해결이 아니라 관성적으로 반복하는 언젠가의 절차를 꺼내 온 것. 비장함이 없는 퍼포먼스는 피로하다. 쾌남의 상징 하드보일드도 엉뚱한 아저씨가 따라하면 대부분 미친짓.


처한 고통이 가짜라는 가혹한 말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오래된 언어로 대화하기에는 어제와 오늘의 유행이 다른 시대다. 요즘은 번역기가 참 잘 되어있다. 외국어가 수수께끼가 아닌 시대다. 그래서 더 그렇다. 빡빡머리의 언어를 해석할 요즘의 언어가 오역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건가. 글쎄다. 시위 전문가는 아니라 쉽사리 조언은 못하겠다. 하지만 나라면 치워야 하는 게 바리깡으로 밀어낸 내 머리카락이 아니라, 버려진 자전거 하나 더 주우며 분리수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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