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방 창문 틈 사이로

by 박준영

'우리 아파트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할 쓰레기봉투 묶음을 훔쳐 간 사람은 자수하세요'


저녁 8시, 여러 동으로 묶인 아파트 가정마다 울려 퍼진 방송. 관리사무소에 앉은 사람은 이전부터 막말이 심했다. 같은 말도 밉게하고 미운 말은 못되게 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움직임이 멈췄다. 정말 가만히 스피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어난 범죄가 파렴치하다는 생각보다 '당사자와 합의된 고지인가'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냥 제발 CCTV 확인하고 조용히 해결하면 안되는건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고발이 없어 CCTV부터 확인할 수 없다고 하기에는 저 방송부터 성립하면 안된다.


'우리 아파트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할 쓰레기봉투 묶음. 그거 가져간 사람은 제가 체면을 봐드릴 거니 경비실 우체통에 넣고 가세요. 지금 당장. 안 그러면 CCTV 돌려서 고발합니다'


방송은 다시 이어졌다. 열린 창 너머로 다닥다닥 붙은 집들의 창문이 하나둘 열리기 시작했다. 시선은 비슷했다. 관리실을 바라본다. 그 모습이 내 방 통창으로 보인다. 한곳으로 모이는 시선은 내게 당도하지 않았음에도 차가웠다. 나와 비슷한 걱정과 원망도 있었고, 범인의 얼굴을 보려는 분노도 있었으며, 싱글벙글도 있었다.


마른세수를했다. 지금 저 방송을 해당자가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듣더라도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발 저 고지가 서로 합의한 고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옆의 다른 생각. 가해자로 불리는 사람의 행위가 실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 사람만큼은 저 방송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앗싸 개이득, 하고 가져온 봉투 묶음이 봄 저녁의 심란함을 부른 부끄러움을 목욕물만큼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부끄러움의 난도질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만의 몫으로 남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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