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luttered_5
밤에 잠을 자지 못한다.
학창시절엔 새벽까지 라디오에 빠져있었고 나이가 좀 더 들고 심야 라디오와 멀어진 후에도 남들이 잠든 시간에 소소한 일들을 즐기며 깨어있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그 시기를 불면의 시작점으로 규정하긴 어렵다. 피곤하고 하품이 나면 졸음이 왔고 그러고 나서 잠이 드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잠을 깊게 못 잔다거나 수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다.
작년 이 맘때 쯤이었다.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 내일이 시작되는 소리를 듣는 날이 늘어갔다. 나는 아직 오늘을 보내지 못하고 씨름 중인데 창 밖 세상은 분주히 움직였다. 구체적인 원인을 말하자면, 생각을 멈출 수 없는 것이 시작이었다. 예민하고 생각이 많다는 얘기를 끊임없이 들어왔고 나 역시 인정하는 부분이다. 쓸데없는 생각으로 사서 고민을 만든다는 핀잔도 익숙하다. 하지만 그 때는 달랐다. 밤이 되면 해일처럼 뭔가 자꾸 밀려와 나를 잠식시켰다. 깊은 감정에 몸이 가라앉았다. 익사당하지 않기 위해 헤엄쳤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싸움을 채 끝내기도 전에 아침이 왔다.
한 두시간이라도 잠을 자는 날과 꼬박 새는 날의 비율에 불균형이 심해질수록 몸은 망가졌다. 많은 날이 가고 길고 지독했던 그 싸움의 끝이 보인 후에도 나의 몸은 낮과 밤을 인식하는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였다.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없었고 일상이 버거웠다. 휴직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일을 쉬고 한 동안은 7시-8시 쯤 잠이 들었다. 산소가 부족해 숨을 쉬지 못하는 머리가 망치질을 당하는 것 같았지만 꾸역꾸역 출근길에 올랐던 시간이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5-6시로 시간을 좀 더 앞당기는 데 성공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천천히 일상을 조율하며 루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들처럼 깜깜한 밤을 친구 삼아 잠들지는 못하지만 시간에 상관없이 일정한 수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줄어드는 통장잔고를 마음으로 채우는 중이다.
'I just want to live out my day and then come tell you about it at night.'
그런데, 얼마 전 본 영화의 대사에서 어쩌면 나에게도 하루를 이야기할 'You, 당신'이 잠자리에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연인의 유무와 관계 없이 혼자가 어색하지 않고 편안한 삶을 추구했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건 나의 오만이었을까. 현재는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수면 시간에 만족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한시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수천 번을 생각하고 글로 끄적이며 답을 찾는 게 내 방식이다.
긴 밤을 채울 생각거리가 또 한 가지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