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ddleton

#Uncluttered_영화_5

by Savie


- Paddleton/ Alexandre Lehmann/ Mark Duplass and Ray Romano/ 2019



여행을 통해 일상을 깨뜨리고 완전한 변화를 주는 것이 내 삶에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지만, 최적화된 루틴에 따라 하루 하루 일상을 쌓아가는 것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직장에 나가지 않는 요즘의 하루는 좁은 궤도를 그리며 천천히 흘러간다. 잠에서 깨면 양치 후 물을 한 잔 마시고 30분 정도 매트 위에서 수련을 한다. 요가로 몸과 마음을 깨우고 나면 청소기를 돌리며 기분을 좀 더 끌어올리고 첫 끼를 먹으며 하루를 보낼 준비를 마친다.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카페로 장소를 바꿔 이것 저것 소소한 작업을 하며 생산적 활동의 기쁨을 채운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한 두 시간 정도 부엌에서 시간을 보낸다. 몸은 고단해지고 마음은 가벼워지는 일과이기에 웬만하면 빼놓지 않는다.


앤디(Andy)와 마이클(Michael)의 일상은 매우 안정적인 루틴을 바탕으로 흘러간다.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친구인 그들이 공유하는 일상은 퇴근 후 패들턴으로 시작된다. 게임을 마치면 저녁으로 피자를 먹으며 퍼즐을 맞추고 매일 밤 똑같은 쿵푸 영화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혼자이되 혼자가 아닌 삶을 사는 둘의 루틴은 나의 그것과 다른 점이 많을 수 있지만 반복되는 일상에서 위로를 받고 그 힘으로 또 무심히 내일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그 본질은 같다고 생각한다.


'In the face of death, routine is a comforting thing. The greatset change that can occur in someone's life is it's end.'


우리의 삶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삶의 끝, 죽음이다. 영화를 본 후 읽었던 몇 개의 서평 중 가장 인상적인 문장이었다. 마이클의 삶이 얼마남지 않음을 인지한 후 앤디는 사소한 변화에도 민감해진다. 일상을 잃지 않고 삶의 가장 큰 변화를 준비하겠다는 마이클은 침착하고 이성적이지만 앤디는 저녁으로 준비하던 피자가 탄 것에 화를 감추지 못한다. 그들이 공유하는 루틴에 작은 금이 갈 때마다 앤디의 불안감이 삐죽 삐죽 새어나온다.


'Medically assisted death'

마이클이 처방 받은 약을 구입하기 위해 일상을 벗어나 떠난 짧은 로드트립에서도 앤디는 끊임없이 두려움, 불안과 싸운다. 평소와 다름 없는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고 둘만이 즐길 수 있는 농담을 군데 군데 섞지만 루틴은 무너지고 있다. 급기야 앤디는 문방구로 달려가 작은 금고를 사고 일상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잠재적 요소를 눈 앞에서 제거한다.


"That's mine. I want it."


"Maybe it is yours. I need to hold it. All right?"

"I don't know why you are making a big deal out of it."


"Because I'm the dying guy. I'm the dying guy."


"Okay. All right. You can't keep saying that."


"But you keep taking that. I'm the dying guy."


"All right. Shut up with that."



마이클에게 제대로 자신의 감정을 쏟아낸 후 앤디는 조금 편안해보였다. 부엌 한 쪽 차가운 바닥에 앉아 캡슐 100개를 털어내 한 데 모으며 마지막을 함께 준비하는 둘의 모습은 애잔하고 한편 따뜻했다. 몸에 딱 맞던 루틴을 제 손으로 무너뜨리고 홀로서야 하는 앤디, 처연한 구석 없이 담담하게 일상을 마치려 노력하는 마이클. 영화를 보는 내내 잔잔하지만 모자람 없는 슬픔이 이어졌다 .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자칫 너무 무거울 수 있다. 하지만 패들턴은 죽음이라는 중력이 삶을 못 견딜 정도로 짓누르지 않는다. 그들의 하루 하루가 잔혹하지도 않다. 루틴이 조금씩 무너지고 일상이 덜컹거리지만 거기서 오는 불안과 두려움도 어느 순간 다시 일상이 된다. 죽음을 말하는 이 영화에서 위로라는 아이러닉한 정서를 느끼게 되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인 듯 하다.





*두 배우의 연기와 카메라의 움직임이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그리고 앤디와 마이클이 컵케이크 하나를 두고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영화의 스토리, 분위기, 캐릭터의 특징 모든 게 담겨 있을 뿐 아니라 둘이 주고 받은 수십 개의 농담들 중 단연 최고였다.


"You still got cancer that's killing you?"


"I think so."


"See? It never works."


"You should have gone with sand-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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