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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은성 Oct 07. 2020

32살

30대가 되면 비틀거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타인에 대한 경계선 장애, 최근 내가 앓고 있는 병명이다.


이 병은 다양한 형태의 증상이 있지만 주로 내가 겪고 있는 건,

‘친구나 연인을 사귈 때 급격히 가까워지며 극단적인 친밀감을 가지다가도 어떨 때는 극단적으로 냉담해지고, 현실이나 상상 속에서 타인에게 버림받는 것을 피하려고 미친 듯이 애쓰는 것.’ 그리고 이 증상의 부작용으로서 나에게 나타나는 양상은 약물남용 (알코올), 식욕부진.


영국에 있을 때, 그리고 막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의 나는 내 경계선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할 말은 하고, 자를 사람들은 적절하게 잘랐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삶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의 거절이 상황에 대한 거절이 되기보단, 상대에 대한 거절이 되는 순간이 반복되어갔고 상대에게 미움이 받기 싫었던 나는 ‘예스 걸’이 되었다.

머리를 쓰며 상대와의 관계를 대화 및 갈등으로서 조율하는 것을 택하기보단 쉬운 길, 이른바 적당히 상대가 원하는 바를 해주는 것을 선택했고 이 짓을 3년간 하다 보니 나는 나를 상대방에게 ‘희생’에 가까울 만큼 맞추고 있었다. 


최근의 나는, 내 주변인들에게 이런 유의 말을 반복해서 듣고 있다.


“너는 타인에게 배려를 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을 하고 있어. 네가 마음에도 없는 다정함으로 착한 사람인 척 구는 게 과연 타인을 위한 건지, 아니면 자기만족인지 한번 생각해봐.” 


나도 안다. 내가 뭐가 잘못된 것인지.


올해 내가 사람들을 만나고 희생에 가까운 배려로 최선을 다하는 동안 나는 그로기 상태에 자주 빠졌고, 번아웃이 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행동을 멈출 수 없었다.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자 하는 욕심. 상대방의 삶에 소속되고 싶어 멈출 수 없었던 희생. 설령 내가 희생을 베푸는 대상에게 애정이 없다고 할 지라도 나는 그 사람에게 속해있고 싶었다.

혼자가 돼버린다면 실패작이 될 것만 같아서 좋은 사람, 애정이 넘치는 사람, 이해심이 넓은 사람,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 좋은 썰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날 포장하여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잔뜩 있는 것으로, ‘아. 난 좋은 사람이구나.’를 끊임없이 확인하곤 하였다. 나는 실패작이 아니야, 나쁜 사람이 아니야,라고.

설령 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더라도 하나가 끊어지면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라고 끝없는 자기반성을 하곤 하였다.


내가 나 스스로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확신이 들지 않아 했던 행동들.


그래도 내 마음이 붕괴되지 않기 위한 최후방의 방어기제는 존재했는지 스스로 생각했을 때 넌 정말 열심히 했어, 이 관계에서.라는 확답을 가지면 상대방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앞전에도 말했듯 나 스스로 세워둔 ‘최선’의 기준치가 ‘희생’ 수준이라 나를 철저하게 몰아세웠다.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해야 해!’ 이렇게. 


그러면서 생겨났던 내 마음속 폐허들. 고칠 수 있을 수준으로 조그마했던 내 폐허는 점차적으로 커져갔고, 어두컴컴해졌으며, 풀지 못할 미로가 되어갔다. 

이 폐허를 가끔은 타인에게 드러내면서 속풀이를 하곤 했어야 했는데, 타인에게 나의 안 좋은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나는 적당히 좋은 사람인 척 연기를 하곤 했다. 그리고 이 연기를 하는 동안 32년간 내 안에 나름대로 정의 내렸던 타인에 대한 기본, 배려, 희생의 경계선이 전부 붕괴되어 어그러지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점점 더 술을 참을 수가 없게 되어갔는데,


1) 나의 우울한 상태를 알코올의 힘을 빌려 하이퍼 상태로 올린 후 상대방을 재미있게 해 주기 위함

2) “술 김에 라는 이야기인데..”라는 변명을 만들기 위함

3) 상대가 내가 하는 말, 행동을 잊어줬음 하는 바람. 그래서 혹시 내가 상대방에게 실수했더라도 그들의 기억에서 내 실수가 잊히길 바라는 마음


이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나는 점점 알코올 중독이 되었다.

맨 정신에서 수다를 떨면 상대방에게 이렇게 말해도 되나, 저렇게 말해도 되나 를 고민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치열하게 고민하는 게 머리가 아파 그냥 술을 마셨다. 


이 것이 나에게 독임을 잘 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성향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른다는 건 마치 뒤죽박죽 엉킨 실타래를 바라보는 기분이어서 도저히 손이 가질 않는다. 


32살이 되면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기준치가 명확해지고 뚜렷해지며 선명해져서 삶을 살아감에 있어 비틀거리지 않을 것이란 환상이 있었는데, 나는 또 보이지 않는 길을 향해 걷는 기분이다.

이러한 것이 인생이고,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는 것의 연속이라면, ‘정답이 없는 길’ 속에서 나 홀로 자꾸만 헤매는 기분이라 주저앉은 채로 또다시 우울의 늪에 빠지게 될 것만 같다. 


현재 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는 나의 삶은 절박하고, 애처로워서 참으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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