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의 물건으로 관계를 묶고 싶어 해
“넌 참 원초적인 방법으로 사랑을 확인하는구나?”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던 이에게 우정링 혹은 우정 피어싱을 하자고 했더니 날 비웃듯 이런 말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에 잠자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똑같은 액세서리를 나누어 끼는 것에 집착했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내 몸엔 하나 둘 친구들의 흔적이 늘어갔다. 왼쪽 중지의 반지와 오른쪽 뒷바퀴의 피어싱은 CHU와,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의 반지는 M과, 오른쪽 이너컨츠 피어싱은 Spring과, 오른쪽 검지의 반지는 MJ와, 왼쪽 중지의 반지는 YJ와, 왼쪽 귓불에는 E와 나눈 귀걸이가, 왼쪽 이너컨츠에는 JH언니와 함께 한 피어싱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나치게 화려한 내 두 귀와 열 손가락들을 본 사람들은 왜 이렇게 액세서리를 많이 착용하냐고 물었고, 나는 그럴 때마다 힘주어 자랑했다. 이것들 전부 제 인생 친구들과 나눈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액세서리를 나누는 게 취미거든요.라고 말이다. 그럼 나의 이야기를 듣던 이들은, ‘친구가 참 많네요.’라고 말했고 나는, ‘그들은 내 인생의 자랑거리죠.’라고 대답했다. 또한, 나는 내 인생의 자랑거리인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을 활자에 꾹꾹 눌러 담아 글을 써재꼈다. 진심을 전하는 도구로서 말보다 글을 선택한 이유는 말은 뱉으면 뱉는 즉시 바로 공중에 퍼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니 싫었고, 글은 종이 혹은 웹에 기록돼서 남으니 좋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내 진심의 기록들을 원할 때마다 열어볼 수 있기를 바랐다.
내가 남긴 그들의 향한 연서는 늘 비슷한 내용이었다.
‘당신들에게 그 누구로부터도 받을 수 없는 커다란 사랑, 최고의 우정을 주겠다. 그리하여 내가 당신들의 삶에 가장 가치 있는 사람이 되겠다. 이러한 나의 애정의 크기에 비해 당신들이 작다고 할지라도 상관없다. 사랑한 만큼 약자가 된다고 하던가, 나는 당신들에게 약자가 되기로 자처했다. 당신들이 나의 애정과 노력에 당신들의 속도에 맞춰 답변해 준다면 나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당신들을 향해 걸으리라.’
그리고 이러한 내 진심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왼쪽 이너컨츠 피어싱의 주인공인 JH언니가 내 글을 캡처해 핸드폰 바탕화면을 해두었다고 하며 본인의 핸드폰 바탕화면 사진을 보내주었다. 평소엔 절대로 낯간지러운 행동을 하지 않는 그녀지만, 이런 식으로 돌려 돌려 고백하는 그녀의 무뚝뚝한 애정을 확인한 나는, 내가 걷고 있는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며 만족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친언니가 말했다.
“네 SNS에 올라온 글들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더라. 너는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믿음이 없어. 네가 네 친구들을 사랑하면, 그들도 널 사랑하리라, 그저 믿어주어야 하는데 넌 그러질 못하잖아. 그러니까 그들과 네가 같은 감정으로 묶여 있다는 것을 매 순간 확인하고 싶어서 커플 아이템에 집착하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신뢰라는 건, 애정이라는 건 네 눈에 보이지 않잖아. 그러니 네가 유형의 물건으로부터 상대방의 신뢰를 애정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런 너를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나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불확실함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넌 계속해서 커플 아이템을 통해 인연을 묶는 것에 집착할 거야.”
그녀의 걱정 어린 말에 나는 전혀 반박할 수가 없었고,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언니 말이 맞아. 내가 그런 구석이 좀 있지. 그런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앞으로도 유형의 물건을 통해 관계를 확인하려 들 거야.”
그 말에 대꾸함과 동시에 나는 시선을 거실 바닥으로 돌렸고, 햇빛이 드리워져 따스한 느낌을 주던 거실 바닥에 잿빛으로 가득한 나의 트라우마들이 파노라마처럼 재생되었다.
내 마음 한구석에 터지기 직전까지 꾹꾹 밀어 넣었던 상처. 태어나자마자 ‘둘째’며, ‘딸’이라는 이유로 조부모에게 가족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지 못했던 것. 그리하여 그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착하게 굴었던 것. 그러한 나의 모습에 ‘쟨 착한 것 외에는 뭐 볼 게 있어? 쟨 실패작이야. 잘난 부모랑 다른 걸 보니 다리 밑에서 주워왔네.’라고 이죽거렸던 어른들. 그들에게 포용되지 않으니 집착했던 친구관계. 친구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을의 입장을 자처했던 나. 늘 저자세를 한 채로 그들의 눈치를 봤다. 그러다 보니 ‘만만함’을 이유로 자연스럽게 당했던 왕따. 내가 사랑했던 친구들이 나를 왕따 시킨 주범들이었고, 그렇게 학창 시절 내내 타인들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되었다. 그렇게 유년기, 청소년기를 거치며 내 마음 한구석에서 강력하게 자리 잡은 ‘유기에 대한 공포’.
그 공포심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전혀 극복되지가 않아서, ‘내가 더 잘할게. 너희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게. 내가 가진 애정과 에너지를 전부 쏟아부으며 뭘 요구하든 절대 거절하지 않을게. 그러니까, 날 버리지 마.’로 나타났다. 그리하여 때로는 내가 감당하지 못할 이들도 기꺼이 품어대며 쓸데없이 감정 낭비, 에너지 낭비를 하기도 했다.
자기 학대에 가까웠던, 타인을 대하는 방식.
타인들에게 희생에 가까운 배려로 최선을 다하면 할수록 나는 그로기 상태에 자주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행동들을 멈출 수가 없었다.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상대방의 삶에 소속되고 싶었다. 혼자가 되어버린다면 어린 시절 들었던 어른들의 말처럼 실패작이 될 것 같아서. 그러나, 이런 내가 나도 지칠 때가 있어서 사람에게 취하는 행동에 대해 스스로 비관하였다. 때로는 타인과의 관계를 영위함에 있어 나의 한계도 맛봤다. 그럴 때면, ‘그래.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어. 더 이상 한다는 건 무리야.’라며 다가가던 걸음을 멈추기도, 뒷걸음질 치기도 하였다. 그렇게 흘려보낸 이들도, 잃어버린 이들도 존재하였다. 그렇게 내가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행했거나 역으로 당할 때마다 나는 절망하여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나만의 폐허를 단단하게 쌓기 시작했다.
‘나는 또 이렇게 실패작이 되었구나. 이번엔 뭐가 잘못됐던 것일까. 이 관계 속에서 실패하고 싶지 않았는데.’
조그마했던 내 마음속 폐허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점차 커져갔고 풀지 못할 미로처럼 복잡해져 갔다. 그 폐허가 마치 뒤죽박죽 엉킨 실타래 같아서 어느 순간부터는 풀 의욕조차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 실타래 같은 폐허를 마음 한편으로 전부 다 밀어 넣고 방치했다.
폐허로 구성된 재료들은 다양했다.
‘버림받고 싶지 않아. 그러니 날 버리지 말아 줘. 날 떠나지 말아 줘. 내가 어떤 사람이든 이해해 주고받아줘. 날 가엽다며 끌어안아줘.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해주겠다고 약속해 줘. 그리고 내가 어떤 모습이더라도 날 사랑해 줘.’
나는 필사적으로 이 재료들을 다른 이들에게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나는 누구 앞에서든 여유로운 척하며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 마음속 폐허를 화려한 포장지로 치장하는 기술만 늘어난 덕에 타인들로부터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단계가 되었다. 아니, ‘돼버렸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방치해버린 폐허로부터 도저히 도망칠 수가 없어서, 유형의 물질로 관계를 자꾸만 묶었다.
고독이라는 망망대해에 홀로 표류하고 있을 때마다 손에 끼워진 우정링을 만지작거리면, 그 링을 함께 나눈 이들이 우울의 바닷속 깊이 빠진 나에게 속삭이는 기분이었다.
“괜찮아, 나 여기 있어.”
슬픔이라는 칠흑 같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마다 차가운 금속의 피어싱이 귀에서 느껴질 때면, 그 피어싱을 함께 나눈 이들이 나를 일깨워주는 기분이었다.
“괜찮아, 너는 혼자가 아니야.”
그리하여 내 귀와 손가락엔 불확실한 관계를 묶는 유형의 물건이 자꾸만 늘어갔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내가 30대가 되면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불안함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과거의 나와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나는 타인에게 유기당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며 내가 쥐고 있는 관계가 영원한지를 확인하고 싶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차갑지만 변치 않는 금속 제품들을 타인들과 나누어 끼며 불확실한 관계를 영원한 관계로 만들고 싶어 버둥거리는 것이다.
현재 진행형으로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인간관계에 관한 나의 슬픈 서사는 절박하고 참으로 애처로워서 처참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