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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은성 Oct 13. 2020

이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나는 살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는데, 요즘의 나는 정말 진심으로 행복한 것 같아. 나는 매 순간 뒤 돌아보고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불행해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 나는 내가 그릴 미래가 기대가 돼. 그래서 32살의 나는 행복한 것 같아.”


어김없이 새벽 다섯 시 반에 눈을 뜬 나는 그때까지 잠들지 못했던 친구와 전화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3시간 반동안이나 나누었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늘 비슷하다.

긍정적 삶, 사랑, 행복에 관한 것들. 금전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기에, 어찌 보면 쓸모없을지도 모르는. 그러나 나는 쓸모없는 것들에 대한 가치에 대해 심도 있게 대화를 나누는 걸 좋아해서 새벽부터 그 친구에게 나의 삶에 대해 풀어놓았다.


그 친구와 강화도 당일치기 여행하던 중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가 10대로, 20대 초반으로 돌아갈 거냐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아니라고. 다양한 경험치가 쌓여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쌓여 안정적이게 된 내가, 나는 너무 좋고 아까워서 못 돌아간다고. 그리고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 될 때까지 나는 치열한 삶을 살았기에 다시 이런 삶을 살라고 한다면 못 살 것 같다고, 너무 힘들었다고.


사람을 대할 때의 나의 태도는 늘 열정적이었고, 그래서 마음이 상처투성이었다. 멀쩡했던 적이 없었다. 그렇게 10대, 20대의 나는 예민하고 여린 사람이었다. 상처투성이었으니 감히 ‘행복하다.’ 고 말할 수 없었고, 내 삶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러나 오늘, 내 삶을 쭉 훑어가는 도중 내가 내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올 때면 나를 보듬어주는 이들이 한 명씩 등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던 사람들을 친구가, ‘언니가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삶을 살았으면서 사람에게 냉정해지지 않고 어찌 저리 정이 많고 긍정적일 수 있을까, 하고 궁금했는데 결정적으로 힘든 순간에 손 뻗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네!’라고 짚어주어 알게 되었다. 나도 결정적인 순간에 타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복 받은 사람이었구나.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 나 지금 너무 행복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를 보러 와 주는 친구들이 있는 지금이, 소중한 이들과 함께 있으며 ‘너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너무 충만해서 행복해.’라는 말을 듣는 지금이, 힘들지 않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이젤, 캔버스, 물감, 작업대를 사겠다고 계획하고 있는 지금이.


그래서 나는, 오늘 통화를 하며 ‘감히’ 입에도 담지 않던 ‘행복’이라는 말에 대해 처음 꺼내어보았다.

나, 요즘 정말 행복한 것 같아.


여태껏 이 말을 꺼내기까지의 내 삶은 상처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그 상처를 딛고 일어나 반짝거리게 되었으니. 이만하면 괜찮은 것 같다. 그리고 상처투성이의 나도 다정한 눈빛으로 지켜봐 와 준 이들이 있었으니, 나는 이만하면 충분한 거다.


아마 내가 또다시 삶을 살다가 꼬꾸라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또 심연의 나날들을 보내며 허우적거리는 순간이 오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은 이 충만한 행복감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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