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어쩔 수 없이 몽골이 그리워진다.
분명 떠나기 전에는 사색의 시간을 갖겠다 했다.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생각하고 기록해 그 결과로 작업 (글 혹은 그림)을 시작하겠다, 말했다.
그러나 막상 몽골에 도착해보니 사색은커녕 생존의 연속이었다.
늙은 건지 아니면 무기력해진 건지 모르겠지만 최근의 나는 한 시간의 운동도 벅찼다. 심지어 앉아있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많아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 저질 체력을 가지고 몽골에 와 하루에 몇 시간이고 푸르공을 타고 비포장지역을 달려야 했고, 험준한 산을 타야 했으며, 늘어지게 늦잠을 자기는커녕 아침 7시에 늘 일어나야 했다. 모든 일정들이 나에게 고난이 아닌 게 없었다.
매일 아침 쾌적한 화장실 소식을 보내던 내 장도 열악한 환경의 화장실 앞에서는 패배를 선언하며 화장실을 거부하기 시작해 3일째 되던 날에는 음식조차 들어가지 않았다.
게다가 빛이 사라진 밤에는 화장실까지 가는 길이 무서워 이 악물고 밤새도록 버티기도 하였다.
게르 안에 있는 난로는 화력이 강할 땐 쪄 죽을 지경이었고, 난로 안에 들어있는 숯의 불이 다 꺼질 무렵에는 밀려오는 추위 때문에 이를 달달거리며 겨우겨우 잠을 청해야 했다.
침대는 너무 딱딱해 머리만 닿으면 잘 자는 편인 나조차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내가 잠을 잔 건지 만 건지 하는 상태로 하루하루 투어를 진행했다.
게다가 겨울 몽골의 강렬한 추위는 어떻고.
배, 등, 발바닥에 붙이는 핫팩을 온몸 구석구석 붙이고 손에 쥐는 핫팩은 꼭 두 개를 터트려 양손 꼭 쥐고 다녀야 했고, 서울의 칼 추위에도 내복을 입지 않고 버티던 내가 몽골의 추위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며 하루도 빼먹지 않고 내복을 입었다.
스마트폰 중독이었던 내가 몽골에서는 억지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한국에서는 오지 산골 마을에서도 LTE가 빵빵 터지건만, 이 곳에서는 인터넷이 미약하게나마 터지기만 해도 감사합니다! 절을 하며 밀린 카톡 답장을 했다. 전기도 사정이 다를 것 없었다. 유목민 게르, 여행자 게르를 전전하며 거의 몽골 유목민처럼 살던 우리가 마지막 날이 다 되어서야 발견한 콘센트 앞에서 우가차카 우가우가! 함성을 지르는 원시인처럼 콘센트으으!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웬만한 환경에 잘 버티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유목민처럼 살기 시작한 2일째 되던 날 몸살이나 앓아누웠다.
이렇게 많은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여행이 다 끝나가는 날 일정이 짧아 너무 아쉽다! 를 외쳤고, 몽골은 겨울이지! 하며 다음 겨울 몽골 여행을 기약했다.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쓰는 동안 무수히 많은 겨울 몽골 여행의 장점들이 떠오른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 전세 낸 것 같던 여행 스폿들, 이 곳이 지구인지 화성인지 헷갈리던 멋진 경관, 겨울왕국 같던 풍경들, 무뚝뚝하지만 우리가 괜찮은지 세심하게 챙기는 드라이버, 우리를 잘 챙겨주던 (우리보다 어린) 가이드, 이방인인 우리를 서슴없이 초대하던 유목민들, 사람을 보면 좋아 어쩔 줄 모르고 꼬리를 마구마구 흔들던 개들, 밤하늘에 쏟아지던 별, 은하수, 탁 트인 시야, 몽골 사람들의 순박한 성격을 닮아 순했던 낙타들.
무엇보다 가장 강한 장점은 투박하지만 아름답던 몽골의 풍경 속에 촘촘하게 새겨진 추억과 생각들이다.
은하수와 별을 찍겠다고 밤에 덜덜 떨며 카메라와 사투를 벌었고, 별과 함께 인생 샷을 찍어보겠노라며 DSLR을 삼각대로 고정해놓고 뛰어다니며 추위도 잊었다. 카메라와 촬영 장소를 왔다 갔다 거리며 얼마나 까르르거렸는지. 별 사진을 찍는 밤, 마이너스 20도보다 더 떨어지는 추위 앞에서 DSLR이 정신을 못 차리고 방전되기도 했다. 이 것을 황망히 바라보며 이런 미친 추위!라고 소리도 질렀다.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벗 삼아 이도 닦고 화장실을 썼었다. 이런 경험이 어디 흔할까.
암벽 등반 수준에 가까웠던 차강 소브라가를 다녀온 후론 허벅지에 근육통이 심하게 와서 화장실도 못 가겠다고 친구와 깔깔거렸고, 욜링암에서는 빙판 위를 걸으며 미끄러지지 않으려 펭귄처럼 뒤뚱뒤뚱 안간힘을 쓰며 걷던 그 모습에 계곡이 다 떠나가라 웃었던 것.
홍고르 엘스는 사막 산맥이어서 두 걸음 올라가면 한걸음 뒤로 미끄러지는 환경 탓에 등반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다들 정상까지 못 올라가겠다고 생각했고 등반하는 도중도중 내려가자고 소리를 질렀지만, 결국은 정상까지 와 멋진 경관을 봤다. 내려오는 것은 올라가는 것이 비해 훨씬 쉬웠다.
홍고르 엘스 정상에서 사람들이 인생을 괜히 산을 오르는 것에 비유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힘든 삶의 여정을 걸으며 때론 삶의 고통에 멈춰 선다고 할 지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끝이 있으며, 힘들었던 과정만큼 이름다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다시 한번 믿게 되었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 신나게 탔던 모래 썰매. 사실 썰매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미리 알았더라면 등반이 그리 힘들진 않았을 텐데.
바람이 엄청나게 불던 바양 작에서는 서로 바람에 밀리지 말라며 꼭 붙어 있었던 것들.
하루에 한 장소, 미션 클리어하듯 돌파하는 동안 몽골식 유목민 생활에 익숙해져 버려서 미친 듯이 흔들리는 푸르공 안에서도 기절해서 잠들거나 혹은 창가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열심히 감상하게 되었고 (심지어 글도 쓰고 있다.), 게르의 불편한 환경이 익숙해졌으며, 아침 기상도 나름 잘하게 되었다. 인간은 역시 적응하면 어디서든 살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이러한 추억과 생각을 마음속에 쌓으며 하루하루 일정을 격파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몽골 생활을 하며 느끼는 사소한 삶의 불편함보다 몽골의 위대한 자연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