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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은성 Nov 01. 2020

이별 앞에 매번 더뎌서

어쩔 수 없이 나는 슬픔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인가 봐

참으로 맑은 날이었다. 전시를 철거하러 가는 내내 하늘이 참 맑디 맑다, 그렇게 생각했다. 걷다가 자꾸만 하늘을 바라보게 되어서 걸음이 내내 느렸다.


전시를 하게 되었어요,라고 말한 게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전시 철거 날이었고, 전시 철거하기 전 아티스트 토크라는 것을 했다.


시원섭섭해요, 라는 동료 작가의 말에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러하니까. 시원한 마음보다는 섭섭한 마음이 더 앞섰다. 다른 이들보다 쉽게 만날 수 있었던 큐레이터 및 동료 작가들도 이제는 마음먹고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섭섭했고, 나름 자주 오며 정들었던 공간으로부터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짧은 만남 앞에서도 이별이란, 나에게 늘 무겁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전시 철거 후 늦은 저녁으로 첫끼를 먹으면서도 이 이별이 자꾸만 서러워져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전시장의 새하얀 벽, 친절했던 상주 큐레이터님, 착했던 동료들. 하나하나가 참으로 아까워서 맛난 고기 앞에서 젓가락을 휘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별 앞에 이렇게 더딘 나는, 매번 슬픔을 이런 식으로 감내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슬픔과 고통을 타인에 비해 많이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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