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9일에 씀
나는 감정적으로 위태로울 땐 글을 쓴다.
이 에세이는,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남긴다.
기본적으로 이 에세이에서 언급할 사랑은 남과 여지만 모든 성별을 막론하고 친구와의 사랑도 해당된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어 상대가 떠나지 않을까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나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남긴다. 어쩌면 30대를 맞이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나에게 하는 다짐의 말이기도 하다.
내가 20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3년을 넘게 만났던 연인이 한 명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에게 마음을 줄 듯 안 줄 듯 굴던 아이. 썸을 탈 때도 감정을 알 듯 모를 듯 굴어 묘하게 승부욕을 자극시키던 아이 었다. (물론 후에 대놓고 감정을 표현했다.) 그렇게 서로의 감정을 줄타기하는 썸을 끝내고 그 아이는, "우리 사귈래?"라고 물어왔고, 나는 "좋다." 고 대답했다.
그 아이는 자신의 미래에 상당히 욕심이 있었던 사람으로 이것저것 하는 것들이 많아 너무나 바빴고 반면 나는 학교 생활만 충실히 하면 되는 사람이었다. 해서 상대적으로 상대에 비해 나는 빈 시간이 많았다. 자연스레 나는 나의 빈 시간 속에 그 아이를 집어넣었다. 그러다 보니 그 아이에 대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그 마음의 크기만큼 나는 점점 그 아이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아? 날 사랑하긴 해? 나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아? 날 보고 싶어 해 줘. 그리워하다 울어줘. 사랑해줘.’
사랑을 확인받고 싶었다. 해서 사랑에 빠진 여자가 할 만한 말과 행동을 집약해서 해대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나의 요구에 지칠 법도 했지만 끈기 있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줘,라고.
기다려줘, 그 사실이 사실 화가 났다.
행복하려고 시작한 연애인데 나는 자꾸만 외로워지는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상대를 일방적으로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으니까. 또 내 마음의 크기는 100인데 그 아이 마음의 크기는 30인 것 같아 서러웠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나를 그리워하긴 해? 나를 어떻게 생각해? 너에게 버림받을까 봐 무서워.’라는 마음이 내 머릿속을 휘감았다.
그래도 그 아이가 나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믿었고 -혹은 믿으려 했고- 나는 섭섭한 마음을 꾸욱 참고 이 아이의 우렁각시가 되기도 했고 엄마가 되어주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그 아이는 나의 사랑을 사랑으로 보답할 줄 알았던 친구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상대방에게서 사랑의 풍만함을 느꼈다. 대략 3개월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한 결과였다.
그 아이와 사귀면서 나는, 사랑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화합해나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타인에 대한 안정감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상대방의 사랑 속에서 유영하며 자유롭게 사랑을 표현하는 내가, 아니 그때의 내가 너무나도 이뻐 보였다. 내가 이뻐 보이니 뭐든 자신감이 넘쳤다. 모든 사람들이 '사랑받더니 좋아 보인다.'라고 했다. 또 '위태로워 보이던 네가 안정적이게 보인다.'라고 하기도 했다.
이 연애 속에서 믿음이 생기니 나는 나의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친구, 공부, 운동, 건강, 식습관 등등.
내 인생을 우선순위로 두며 사랑을 사이드로 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사랑도 중요한 가치였지만 사랑을 받았던 그때의 나는 내 인생이 더 중요했다.
그렇다.
사랑을 하는 동안 사랑 때문에 나의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 사랑을 함과 동시에 나는 내 인생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다.
이렇게 행동했더니 이 연애에서 문제점이 별로 나오지 않았다. 가끔 서로 쓸데없는 질투를 하기도 하고 여타 다른 연인들처럼 연락 문제로 싸우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참 많이 의지했고 사랑했다.
이 아이와의 연애에서 내가 버려질까 봐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상대를 믿었다. 아니, 그 아이였기 때문에 믿을 수 있었다. 그 아이의 변치 않는 사랑 속에서 나는 앞으로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고, 그렇다면 이 아이가 앞으로 만날 여자들 중 내가 가장 빛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럼 빛나는 나를 놓치지 않지 위해 상대방은 노력할 것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마음으로 연애를 하다 보니 상대에게 집착하는 마음도 사라졌고, 상대를 진심으로 존중했고 존경했으며, 그렇게 '성인'의 연애에 가까운 것을 했다. 그리고 이 불안하지 않은 마음의 원동력에는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이 기초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농익고도 성숙한 연애를 하다 보니 또 다른 연애가 떠올랐다. 불안하고도 불안했던 연애. 마음의 크기가 달라 내가 버림받을까 발을 동동 굴리며 불안해했던 연애가.
처음에 그 사람에게 시선이 갔던 건 디테일이었다.
어른들에게 예의가 깍듯했고 몸에 베인 매너가 깔끔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냥 좋은 사람이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디테일에 자꾸만 시선이 갔고 결국 나는 그 사람에게 마음을 주었다.
내가 먼저 그 사람에게 시선이 가서 시작된 연애 었다.
사랑을 말로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한 나는 그 사람에게 많은 말로서 감정을 표현했다. 그 사람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고 그 반응조차 나는 섭섭했다. 사랑은 표현하면 할수록 커진다고 했던가. 정말로 그랬다. 말로서 그리고 시선으로서 그 사람에게 애정을 표현하면 할수록, 나의 마음은 가속도를 달리기 시작했고, 나의 연애가 늘 그랬듯 나의 모든 시간들에 촘촘히 그 사람으로 채워 넣기 시작했다.
참 많이 바빴던 그 사람은 아마 나만큼 자신의 시간에 나로 채워 넣지 않았으리라.
그러다 보니 당연히 마음의 크기는 내가 100 그 사람이 10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나는 불안했다. 제발 부탁이야. 내 마음이 100이니까 너도 100을 줘, 떼를 썼다. 그것이 반복되다 보니 그 사람은 나를 부담스러워했다.
마음이 불안해지면 사소한 것들에서도 섭섭한 법이다.
나는 티끌만큼 사소한 것에도 그 사람에게 섭섭해했고 급기야 좋게 말할 수 있는 사건에도 날을 세워가며 공격적으로 대했다. 결국 그 사람은 나의 칼날 같은 말에,
"네가 하는 말에 틀린 게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우리 정리하자."
라며 이별을 고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개미 몇천 마리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인간관계에서의 디테일이 뛰어난 사람이라 꽤 오랫동안 연애를 할 사람일 것이다, 쉽게 믿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상대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관계에 있어 진지한 사람일 것이다, 생각해 마음을 많이 줬고 내가 먼저 사랑을 많이 베풀겠노라 맹세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만나려고 했는데, 진지하게 만나게 마음을 바꿔놓게 해 놓고선 지금에 와서 나를 버리는 상대가 나는 너무 미웠다.
사실 그대로 끝을 내고 싶기도 했다. 이 연애를 하는 동안 내가 너무 아팠으니까.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었고 상대에게 미움을 받을까 봐 일분일초가 두려웠으며 감정이 늘 호수처럼 잔잔하며 표정이 없고 말로서 표현하지 않는 상대가 나는 사실 너무 버거웠다. 늘 상대에게 버려질까 무서웠다.
‘그래, 네 말대로 차라리 나에게 사랑을 퍼부어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내가 더 행복할 텐데. 차라리 이대로 그만두자.’
마음먹다가도 이대로 그와 끝을 내면 내가 후회할 것 같았다. 울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자존심을 다 집어던지며 상대를 잡았다. 다행히도 상대는 마음을 바꾸었지만 그에게 받은 상처는 내 마음속 조그마한 폐허를 남겨두었다. 아, 이 사람은 언젠가는 나를 쉽게 떠날 수도 있겠구나. 나를 딱 이만큼만 필요로 하는구나.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내가 단단하게 쌓아 올린 감정이 조금씩 조금씩 부서지는 소리가 귀로 들렸다. 이제 이 사람을 많이 좋아하지 않으라라. 사랑하지 않으리라. 이런 상태가 반복되다 보니 결국, 이 연애가 행복하지 않았던 나는 헤어짐을 고했다.
헤어짐을 들은 건 상대였지만 사실상 내가 차인 그런 연애 었다.
그때 나는 자존감이 바닥을 쳤고, 상처 받았으며, 그 사람에게 너무 많은 마음과 시간을 줘버린 나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그 사람을 나는 너무 가지고 싶었다. 상대가 내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었고, 내 것이라고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고 싶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애정이 늘 받고 싶었다.
“널 사랑해, 네가 늘 보고 싶어, 네가 늘 그리워.”
그런 표현이 필요했다. 사실 나는 그가 다정하게 말만 해도 됐었는데, 그것을 못 받으니 관계에서 나는 무척이나 괴로웠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사랑받지 못했다는 나 자신이 절망스러웠다. 해서 나는 자꾸만 피폐하게 말라갔다. 나는 나를 감정적으로 학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 스스로를 학대하는 모습을 보다 못한 엄마가 그랬다.
“그 사람은 그냥 표현력이 부족한 사람이었던 거야. 모든 사람이 너처럼 표현력이 풍부할 순 없어. 그 사람, 너 많이 사랑했어. 그러니 너 자신을 학대하지 마.”
그러면서 내가 구석에 처박아둔 그가 나에게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쓴 편지를 나에게 건넸다. 내가 잊고 있었던, 그가 할 수 있었던 최대의 표현. 그는 그렇게 에둘러 나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내가 문제였다. 그를 믿지 못했던 나의 문제.
감정도 표현도 뭐든 빨랐던 나에 비해 속도가 느렸던 그 사람. 내가 울고 불며 널 사랑한다고 온 몸으로 표현할 때, 따뜻한 시선으로 가만히 나를 쓰다듬던 그 사람. 나는 그 시선을 조금 더 믿었어야 했다.
그러나 상대의 마음을 믿지 못하니 그를 소유하려고 했었고 결국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상대에 대한 소유욕과 집착은 사랑이 아니다. 상대의 감정이 불안했던 나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람에 대한 소유욕이 커서 상대를 온전히 소유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이 사람의 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단순히 상대의 마음을 내 멋대로 컨트롤하고 싶어 하는 것일 뿐 '성숙한' 사랑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또한 감정에 불이 붙는 것에도 각자의 속도가 달라서 사랑한다면 상대의 감정의 속도에 천천히 발맞춰 나가야 한다는 것을 왜 나는 몰랐던 것일까. 그냥 천천히 기다리다 보면 그 사람도 언젠가는 타오를 텐데, 나는 왜 그것을 몰랐을까.
3년 반 동안 사귄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지며 느꼈던 건, 결국 사랑 이전에 자기를 두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사랑으로부터 행복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며 같은 감정을 함께 공유해나가는 것이지 쓸데없는 집착과 소유욕이 아니라는 것. 우리 모두는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는 사람 들고 빛나는 사람들이니 그런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대방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결국 그 정도일 뿐.
그러니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 것. 상대가 나를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것. 상대가 떠났다가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것. 그리고 만약 돌아오지 않으면 처음부터 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잊어버리며 살 것.
이 것이 지난 연애들로부터 배운 것들이었다.
내가 이렇게 지난 연애들을 밑 낯에 가깝게 들어내며 에세이를 쓰는 이유는, 나와 같은 범우가 되어 아프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렇게 현명한 척 글로 적었지만, 나는 앞으로 내가 마주 할 연애에도 어리석게 구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상대를 가지지 못했다고 불안해하며 집착하기도 하고, 두려움에 떨기도 하고, 날 사랑하니? 따위의 3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치며 초조해할 것이다. 감정의 폭이 타인보다 커다란 사람은 늘 아픈 역할을 담당하니까.
그러나 나는 상대의 감정의 속도를 기다리는 성숙한 사람이 되려 연기할 것이다. 그 연기를 반복해서 하다 보면 결국 그 행위는 내 것이 될 것이라 믿는다.
또한 상대가 가진 것들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되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며, 그렇게 나의 삶을 우선적으로 채우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는 빛나는 사람이 되어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떠나겠다, 고 고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나의 것이 아님을 받아들이는 성숙함도 살면서 필요한 법이다.
그러니, 사랑에 너무 아파하지 않기를 바란다.
요란 하디 요란했던 나의 29살이 2일밖에 남지 않았다. 나의 30대는 부디 감정의 요동에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 준 나의 사랑이었던, 사랑인, 그리고 앞으로 사랑이 될 당신들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