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후은성 Nov 10. 2020

그렇게 나는 천사가 되었다.

나의 머리카락은 아마 다른 이의 머리에서 찰랑거릴 것이다.

내 머리카락은 우리 가족 중에서도 유난히 부드러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어렸을 때부터 외모에 지대한 관심이 많았던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헤어트리트먼트와 헤어 에센스를 이용해 머리카락을 관리했다. 또, 엄마는 언니가 파마를 하든 염색을 하든 터치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 나에게는 유난히 긴 생머리를 요구하셨다. 그리하여 나의 머리 스타일은 한결같이 긴 생머리였고, 파마든 염색이든 일절 하지 않았으니 모발의 질이 매우 좋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관리되었던 머리카락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이 너무 싫었다. 그때 당시엔 부모님으로부터 원조를 받고 있는 학생이었으니 부모님의 영향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었고, 엄마의 ‘머리에 무슨 짓 하지 마.’ 말 한마디에 나는 군말 않고 긴 생머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는 머리에 어떤 짓을 하더라도 뭐라고 하시지 않으시면서 나의 머리에만 엄격하게 구는 엄마가 때로는 미웠다. 이 가벼운 미움이 쌓이고 쌓이던 어느 날, 나는 엄마에게 반항을 해보기로 했다. 나의 몇십 년째 같은 헤어스타일이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게 긴 생머리를 감는 일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가끔 머리를 감는 과정에서 내가 빨래를 빠는 것인지 머리카락을 감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힘이 들었다. 그리하여 안방에서 머리카락을 말리면서 엄마에게 선언했다.


“엄마, 나 파마하고 염색할래. 몇십 년 동안 유지해온 이 긴 생머리, 지겹단 말이야.”


그러자 엄마는 절대 염색이나 파마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엄마 본인은 나처럼 좋은 머릿결에 화학 약품을 사용하는 게 아깝다고 하셨다. 내가 긴 생머리 너무 지겹다며 툴툴거리자 엄마는,


“네 머리카락은 곧 좋은 곳에 쓰일 거야.”


라고 하시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좌절된 변화에 한숨을 쉬었고, 몇십 년 동안 반복된 엄마의 만류였으니 그러려니 했다. 곧 나는 엄마의 알 수 없는 미소의 이유를 확인하게 되었다. 엄마는 메신저로 웹 페이지 링크 하나를 보내면서,


“메신저 한번 확인해봐. 엄마가 네 머리카락의 쓰임을 찾았어.”


라고 말씀하셨다.


‘한국 백혈병 소아암 협회’


나와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았던 웹 페이지 링크. 늘 헤어 스타일의 자유를 엄마로부터 박탈당했던 나는 이게 뭐야, 라는 반감이 들었지만 엄마는 엄마 본인이 더 신이 나신 듯 말씀하셨다.


“네 머리카락 그냥 자르긴 너무 아깝잖아. 이왕 스타일을 변화시킬 거라면 머리카락을 잘라서 기부하는 건 어때? 엄마가 보내준 거 자세히 보면 머리카락 기부하는 방법에 대해 상세하게 적혀있어. 그리고 네가 기부할 마음이 섰으면, 엄마가 머리 진짜 잘하는 미용실에 데리고 가줄게.”


사실 나는 ‘기부’보다는 엄마가 데리고 가준다는 미용실에 더 혹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머리카락 기부 기준에 대해 자세하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파마나 염색을 하지 않은 모발, 적어도 20CM 이상.

그때 당시 내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타고 내려왔으니 20CM를 확 자르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머리카락 기부를 결심했다. 그리고 미용실에 입성한 날, 헤어 디자이너분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디자이너분은 내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질끈 묶으시더니 확 자르셨다. 서걱서걱 소리 몇 번에 내 머리는 가벼워졌다. 나름 몇 년을 동거 동락한 머리카락을 확 자르니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나의 선택으로 머리를 자르겠다고 결심한 것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나의 일부분을 억지로 빼앗긴 느낌이 들었다. 나의 기분 변화를 눈치채신 디자이너분은,


“걱정 말아요. 단발로도 이뻐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잘라줄 거니깐.”


라고 말했다. 어차피 뭉텅이로 잘려나갔겠다, 내 긴 생머리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간 것이나 마찬가지어서 모기만 한 목소리로 잘 부탁드린다는 말 밖엔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미용실에는 내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소리로 채워졌다.


“어머, 정말 이쁘게 잘 잘렸네!”


거울 속에서 단발을 한 채로 미소 짓는 내가 정말로 어색했다. 그러나 단발이 잘 어울리네, 칭찬에 나는 단순하게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서둘러서 뭉텅이로 잘려갔던 내 머리카락을 챙겼다. 이제 이 머리카락은 더 이상 내 머리카락이 아닌 누군가의 머리카락으로 살아가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내 머리카락이 귀중하게 느껴졌고 나는 보물단지 안 듯 귀중하게 누군가의 가발의 원료가 될 것을 챙겼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바로 한국 소아암 백혈병 협회에 내 머리카락을 보냈다. 이 것이 부디 잘 쓰이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눌러 담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어딜 가질 않는지 내 생활이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내 머리카락을 기부했다는 사실도 잊고 지냈다. 그렇게 살아가던 중 불현듯 온 문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천사님, 소중한 머리카락을 기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저 나는 지긋지긋하게만 느껴졌던 긴 생머리로부터 탈피하고 싶었고 엄마가 데리고 갈 미용실이 궁금했을 뿐인 사람이었는데, 어느새 ‘천사’가 되어 있었다.


천사.


오랜만에 들어보는 낯간지러운 애칭에 나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리고 해당 문자를 캡처해 자랑스럽게 가족 채팅방에 올렸다. 그러며 나는,


“제가 이렇게 쉽게 천사가 되었네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저 문자가 온 며칠 뒤, 한국 소아암 백혈병 협회에서 소정의 기념품이 왔다. 머리카락을 기증했다는 사실을 잊을만하면 문자로, 혹은 기념품으로 알려오다 보니 별 것 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늘 천사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며 자연스럽게 내 머리카락이 어떻게 가공되어 가발로 재탄생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쓴 아이는 누굴지 궁금해졌지만 호기심은 호기심으로 두었다. 또, 처음으로 들어봤던 천사님이라는 호칭이 자꾸만 듣고 싶어 졌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파마며 염색에 대한 관심이 끊겼고, 2년에 한 번씩 단발에서 장발로, 장발에서 단발이 되었다. 그동안 나의 머리카락은 무수히 잘려나갔고, 모아졌고, 배송되었다. 그리고 그 잘려나갔을 뿐인 머리카락에다 한 협회에서 생명을 불어넣어 누군가의 머리카락으로 존재하게 하였다. 아마 지금도 내가 보낸 머리카락들이 다른 아이들의 머리에서 찰랑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나는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 앞에 위태로운 이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